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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의 기원을 간접체험하다

by 캘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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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오기 전 LA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저 할리우드 사인이 있고, '유승준이라는 비운의 가수가 사는 곳' 정도로만 생각했다.

생각 나는 또 다른 키워드로는 1995년 SBS에서 방영된 'LA 아리랑'과 'LAPD' 등 몇 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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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 3개월 동안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LA가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에게 제2의 고향과도 같은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서독광부였던 고(故) 이희덕 전 한인타운 번영회장이 1970년 현재의 올림픽 가와 하버드 남쪽에 있던 2층짜리 빌딩 1층에 있던 일본인이 운영하던 마켓을 구입, '올림픽 마켓'이라고 이름을 붙이며 식료품 가게를 연 것이 오늘날 LA 한인타운의 시초가 된 것이었다.

고(故) 이희덕 회장은 한인 사업가들과 코리아 개발 협회(KDA)를 조직했고 부동산 개발업자들과 올림픽 가를 따라 싼 토지와 부동산을 구입해 한인 상인들에게 임대했다고 한다. 한인공동체를 대표하는 지역으로 올림픽 가에서 연례 축제를 처음 개최한 연도가 1974년이라고 한다. 1980년에는 드디어 이들 지역이 LA로부터 공식적으로 '코리아타운'으로 지정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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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28일 토요일(미국 현지시간) 제51회 코리아 퍼레이드에 스텝으로 참석해 퍼레이드 참석하시는 분들의 순서를 조율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LAPD들과 시 관계자들이 올림픽 가를 통제해서 차들이 오고 가지 못하도록 했고 40개가 넘는 단체에서 나와 코리아타운 일대를 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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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자가 된 이유는 사회현상을 지근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코리아 퍼레이드를 바라보면서 지난 반세기 이상 한인들이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정말 많은 눈물과 땀을 흘려왔고 오늘날 한인들의 위상을 구축했구나 하는 자긍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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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코리아타운은 상당 부분 쇄락해 가고 있다. 2008년 4만6,000명 이상이 거주하던 코리아타운 내 한인 인구는 올해 기준 2만3,000명대로 절반 가량이나 줄었다. 노숙자들도 많아지고 각종 한인관련 폭행, 사망사고도 늘어나는 등 치안도 나빠지는 추세다. 비즈니스나 학군을 따라서 오렌지카운티 등으로 이주하는 한인들도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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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지리적인 바운더리 안에 가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세상은 IT 기술의 발달로 인해 경계가 사라졌고 언제 어디서나 비즈니스를 할 수 있고,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게 변한지 오래다.

비록 내가 미국에 머무는 기간은 짧지만, LA에 사는 한인이자 관찰자로서 LA 코리아 타운의 태동을 알게 되고 퍼레이드의 스텝으로 참여, 한인들의 삶을 간접체험했다는 것에서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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