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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대신 딸기 케익

때로 예상치 못하게 치루는 대가

by 소담

저녁을 먹고 운동을 가려고 운동복까지 입었었는데, 차 타기 직전에 안 갈 결심을 굳히고 돌아서 바지만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사각거리는, 7부짜리 여름 잠옷바지.

오늘은 그냥, 그 시간에 집에서 케익을 먹고 싶었다.

한 가지 장애물은 집에 케익이 없는데, 운전을 하기도, 옷을 다시 갈아입고 사러 나가기도 너무 귀찮다는 것.

남편은 언제나 이런 작은 문제를 해결해 주는 걸 좋아한다. 그의 계획은 이랬다.

“내가 운전해서 케익을 픽업해 올게 너는 차에서 기다려. 오는 길에 나는 테니스 코트에서 내리고, 넌 운전석으로 기어 옮겨서 집에 오면 되지. 그럼 너는 옷 갈아입고 나가지 않아도 케익을 먹을 수 있고, 나도 테니스에 늦지 않을 거야.”

아파트에 살았다면 불가능한, 차고가 집에 붙어있는 미쿡집에 사니까 가능한 계획이다.

좋았어, 강아지 아들 소바를 안고 있던 그대로, 그 차림 그대로 차에 탔다.


차 안에서 케익 가게로 들어간 남편을 기다리는데, 오래 못 본 남편의 동료 부부가 지나간다. 반가운 마음에 창문을 내려 부르고 문까지 열고 난 후 깨달았다.

바지가 잠옷이다.

서둘러 소바를 무릎에 앉혔다. 그런 이상한 몰골로 차 문 앞에 서있는 부부를 올려다보며 안부를 나눴다.


잠시 후, 케익과 함께 돌아온 남편과 테니스코트로 갔다.

남편은 내가 나가기 쉽도록 차를 돌려 게이트 바 앞에 차를 대주었다. 그는 내렸고 나는 운전석으로 기어가 착석.

그런데 왜지? 왜 하필 지금이지?

차가 안 움직인다. 스틱은 잠겼고, 껐다 켜도 시동이 안 걸린다.

그 사이 차 한 대가 내 뒤에 와 섰다.

소바를 안고 있던 채로 차에 탔던지라 전화기는 안 가져왔다. 미치겠다. 워낙에 이런 상황을 못 참는다. 잠옷바지 차림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다른 선택이 없었다. 차에서 내렸다. 뒤차에 가서 차가 안 움직이는데 3분만 기다려주면 남편 데리고 온다는 설명을 속사포로 했다. 그 길로 테니스 코트까지 전속력으로 달렸다.

뛰다 드는 생각. 차라리 위아래로 다 잠옷을 입을걸. 그럼 평상복처럼 보였을지도 몰라.


제발 코트에서라도 나를 보는 사람은 남편뿐이기를 바랐는데, 남편보다 그의 친구가 나를 먼저 발견했다. 잠옷바지를 입고 테니스코트 주차장을 미친 듯이 가로질러오는 나를 보자마자 남편은 바로 내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러리라 예상한 대로, 차는 남편이 손대자마자 거짓말처럼 멀쩡하게 움직였다.



무사히 집에 왔다.

150분 같던 15분을 보내고 돌아온 것 치고, 침착하게 케익을 잘랐다.

‘폭신하고 가벼운 생크림 홍차쉬폰이 너무 먹고 싶었는데, 묵직하고 들척지근한 미쿡 딸기케익이군.’ 이라는 비교적 평온한 생각을 해보았다.

‘코트 개장한 지 얼마나 됐는지는 몰라도, 이제까지 주차장에 잠옷바지 입고 뛰어간 여자가 설마 나 하나였을까?’ 라는 쿨한 생각도 해보았다.

‘운동 대신 케익을 택한 대가는 보통 그만큼 살이 찐다 정도에서 멈춰야 되는 거 아닌가?’ 라는 하나마나한 생각도 해보았다.


이 정도 일에 그리 크게 동요하지는 않을 나이라는 게 감사하다. 그러나 아무리 별 생각을 다 해보아도, 그냥 운동을 갔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는 후회가 그 모든 생각을 덮는다. 그것까지는 어쩔 수가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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