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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일로 새벽녘까지 등을 켜고 있었다.
겨울일수록 눈이 뻑뻑하고 아파서 최소한 등불을 끌 필요가 있었다.
부욱 부욱.
창밖은 아직 어두운데 골목길 눈 치우는 소리.
부지런한 이웃이 있어 또 아침이 밝아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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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림을 한다.
솥 위로 김이 모락모락 퍼지고,
문득 밖이 궁금하다.
끼익.
어머나!
소복한 흰 눈으로 가득한 나의 마당에 새 발자국.
문 앞까지 다가와 종종거렸을 새 발자국.
나를 찾았구나.
문안인사일까.
혹시 모이 달라고?
요 며칠 추운 날씨라서 문 앞에서 서너 걸음쯤 떨어진 곳에 보리알을 뿌려두곤 했었다.
내가 안 보는 사이 보리알 있던 자리가 깨끗해져 있곤 해서 들르는 새가 있음을 짐작은 했었다.
까마귀일까?
여름까지는 전봇대 위로 까마귀가 가끔 보였다. 그런데 엊그제 내 머리 위를 지나 옆집 지붕에 앉는 까치가 있었다.
저 까치인가?
혹은 뒷산에서 외출 나온 좀 더 작은 새일지도?
보리알을 발견하고 내려앉는 손님이 정작 어떤 새인지는 알 수 없다. 누가 됐든 고놈들은 꼭 내가 안 보는 틈에만 살짝 들르니까.
그런데 흰 눈에 찍힌 발자국이 어딘지 예의바르다.
어제 그제 보리알 뿌려지던 자리를 파헤친 것도 아니다.
마치 특별히 맘먹고 날 찾아온 방문객처럼
내 방문 앞까지 왼발 오른발 가지런한 걸음걸이로 다가왔다가.
문앞에서 서성였겠지.
하지만 내가 대답할 리 없잖아.
문밖이 사뭇 조용했는데.
이만 가야겠구나. 아쉬운 듯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을 너희, 흰눈 속에 날 찾아왔던 새,
나의 사랑스러운 작은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