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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종 종Mu Jan 23. 2022

웃기는 이야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어

#.

통화 가능?

주말 오전에 아들에게 보낸 문자.

보통 하루 일이 다 끝난 뒤에 통화를 하는데 관성이 붙어선가, 우리는 휴일의 통화도 저녁 시간이다.

그런 판에 이렇게 대낮에 그것도 점심 전에 전화하자 하면, 아들로선 엄마쪽에  뭔가 꽤나 급한 용무가 있나? 하고 생각할 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았다.


#.

엄마.

응, 아들, 내가 어떤 얘기를 들었는데, 들으면서 너한테도 들려줘야지 했거든. 그그제껜가 듣고 그 생각했는데 바로 전화를 안 하다보니 깜박 잊었어. 그러다 어제 다시 생각 나서, 오늘 안 전하면 또 잊어버리고 못 전할까봐...

나는 이렇게 서두를 떼고 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어떤 부산 사는 아줌마가 새벽 6시면 산의 약수터에 다니는 게 습관이었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꼭 그 시간에 일어나 약수를 받아오는 거야. 산 아래 마을이라 그 아줌마처럼 일찍 약수터 다니는 주민도 있으니 알음알음 인사도 나누고.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시계 알람소리에 깨어나서 바로 약수터를 향해 출발을 한 거야. 그런데 좀 다르더래. 산길에 앞에도 뒤에도 사람이 하나 안 보이더래. 여느 때 같으면 아는 얼굴들이 앞 서거니 뒤 서거니 보이기 마련인데....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 아줌마는 6시 알람을 맞춰놓았다 생각했지만, 딸이 시험공부 하려고 새벽 4시로 알람을 바꾸었던 거야. 그 엄만 그 사정을 몰랐던 거고.

아뭏든 뭐가 문제인지 잘은 몰라도 산길에  자기 혼자이니 무서울 거 아냐? 그래도 이미 반절은 올라온 셈이라 집으로 돌아가기도 아깝고, 혼자서 내처 걸어오르기엔 무섭고. 마음을 정하기 힘이 들더래.

그렇게 어쩔 바를 모르는데 마침 길가에 아줌마가 올라타 앉아도 될 만한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뛰었나 봐. 그래서 거기 걸터 앉아서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대. 그러다 나뭇가지에 기대어 잠이 들었었나 봐. 얼마나 잤을까, 깨어나 보니, 길에 사람이 걸어오는 게 보이더래. 그리고 자세히 보니 맨날 약수터에서 마주쳤던 동네 아저씨였던 거야. 얼마나 반가웠겠어. 그래서 아저씨가 나무 곁으로 다가섰을 때 풀썩 내려서며

"이제 오는교?"

라고 인사를 건넸대.

근데 있지, 그 아저씨가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대.

그 아저씨는 예전부터 심장이 안 좋았대. 그런데 새벽에 나무에서 뭐가 떨어지며 인사를 하니 불여우가 나타났나  놀랐던 모양이라고 동네사람들이 그러더래.


#.

그러니까 아저씨는 갑자기 뭐가 나타나 사람소리를 내니 깜짝 놀라서 죽은 거야.

이거 실화야? 어디서 들은 얘기야?

응, 30 년 전인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소개되었던 실화래.


#.

어이없게 벌어진 사건.

이런 이야기가 주는 어떤 충격은 충격 자체가 흥미인지 교훈인지를 구분할 수 없게 한다. 그런데도 내가 이걸 꼭 아들에게 얘기해 주고 싶어한 이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꼭 이 내용이 전해져야 할 필요는 없는데 흥미를 당기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그런데 우연히 듣게된 이야기. 기억의 소실점을 지날까봐, 어제 저녁부터  간격을 두고 잊지 마. 잊으면 안 돼.를 되뇌였다.


그리고 더는 되뇌지 못할 것 같아 통화를 신청하는 신호를 보냈고, 마침 아들이 그 신호에 응답해왔다. 이리하여 이야기 전달하기는  성공했다.

#.

그게 뭐 좋은 얘기라고, 기어이 아들한테 전했누?

같은 골목길 이웃인 오 할머니가 묻는다.

내가 할머니한테 이 이야기와 아들과의 통화를 말해 준 직후.

오할머니는 역시 직설가.

사실 나도, 통화를 마치고 나서 그런데 이 이야기가 뭐라고 나혼자  열심일까, 자문自问하기도 했는데.... 이게 재밌는 얘기라 할 수도 없고 실제로 일어난 사망 사건이니 절대 유머로 해석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ㅡ 어떤 식으로든 당사자 귀에는 거슬릴 터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통화 직전까지 이야기를 까먹지 않으려고 무지 애썼다. 대체 왜?

이렇게 퉁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어릴 때, 학교에 가서 우스운 일이다 싶으면 꼭 기억했다가 집에 와서 나한테 들려주곤 했어요. 그 무렵 내가 안 웃었어요. 사람 때문에 기가 막히다 싶은 일들,  기억들이 쌓여서 웃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때는 말을 해 주지 못했지만, 아이한테 내심 많이 고마웠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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