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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종 종Mu Jan 20. 2023

필리핀에 대한 실낱 같은 추억

한 입 안주거리

#.

아들의 여행 첫날.

이제사 비행기를 탔을 것이다.

필리핀을 경유할 것이라고 한다.


산다라 박의 나라!

엄마가 그걸 다 알아?


#.

엄마가 그걸 다 알아? 에 대한 두 가지 반응

1.

그럼, 이번에 태양(Big Bang) 신곡도 듣고 있는 걸.


지민(BTS)의 피처링을 더 앞세워 말하려다 태양을 먼저 앞세운 것은, 아들이 BTS를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서이다.


언젠가부터 아들의 음악 취향이 내겐 어렵다. 언젠가는 일본 여자 록 가수를 좋아한다고 했고  언젠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라고 이름을 알려주는데 난 전혀 듣도보도 못한 유럽 가수였다. 게 중 콜드 플레이하고 퍼플 프린스 이 둘은 유명가수여서 아들 덕분에 이름이라도 익힌 걸 고맙게 여기지만, 알다가도 모를 일은 세상에서 젤 유명한 BTS는  왜 마다하는지. 내가 쫓아가기도 힘든  뮤지션을 찾아 좋아하는  것 만큼 아들과 거리가 느껴진다.  그래서 지민 이름은 쏙 뺀 것이다.


태양은 여전히 멋있지ㅡ 아들도 MV를 보았던 모양.


사실 우리 모자는 Big Bang의 팬이었다. 둘이서 동일 취향으로 같은 음악을  들었던 그때. 에픽 하이와 타블로, 이하늬도 있었지만 GD는 정말 매력과 창조력이 넘치는 최고 정상의 아이돌이었다.

그들의  재능이 잘 유지되어  절대 한 물 간 뮤지션으로 끝나지 않기를. 우리는 기억 속의 스타에게 막연하게나마  그런 기대를 품고 있다. 하지만, 장본인인 그 자신들은 세월의 무게뿐 아니라 수많은 시선과 제각각의 입질을 다 견뎌야 한다. 그 속에서 하냥 청춘인 양 산다는 건 거의 곡예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간절한 만큼 객관적으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너끈히 보여줬다. 이다음에도 기대해 보라는 듯이. 태양이 해냈다.


언젠가 좋아했던 가수의 새 작품에 환호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일치하는 모자의 순간이 문자메시지 두 줄에 담겨.  지금. 여기에 굳이 아들이 좋아하지 않는 BTS 얘기를 꺼내지 않았던 건  참 잘한 일이다. 엄마로서.


2.

그럼. 다 알지.ㅡ 이렇게 대답하고 싶은 걸 참고 나 개인적으로  필리핀에 대한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  생각해 봤다.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원어민 영어강사와 아파트를 나눠 쓴 적이 있었다. 그녀는 영어로만 말해야 했으니 우리는 길게 대화하지 못했다.


지금은 이름도 까먹었지만 그녀와의 인연으로 우리 모자는 필리핀 사람과 한 지붕 아래 생활한 추억도 갖고  있는 셈 아닌가.


지붕 아래서 영어 강사는 영어 강사대로 우리 모자는 모자대로 각자 생활에 바빠 거실에서나 마주치면  미소와 함께 짤막한 대화를 나누는 가느다란 인연을 누렸던 거다.


그때 우리랑 아파트 같이 쓴 영어선생님도 필리핀사람이었잖아.

엄마. 그 선생님 BIG Bang 좋아했어.

어? 나는 몰랐는데!

TV에 Big Bang 나오니까 좋아했어.

그랬구나.


여기까지가 오늘 밤 자정을 넘겨 필리핀에 경유할 아들과 나눈 단 몇 줄의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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