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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동네 어른 한 분은 쉽게 오해한다.
인사하고 오래 머물 짬이 없어 종종걸음을 하면,
"내가 니를 잡아 묵나?"
그 맘을 안다.
모처럼 얘기 나눌 만한 얼굴을 만나 기쁜 터에 금방 헤어지기 싫은 마음.
그러나 그런 어깃장 같은 소리도 자주 들으면 부담스럽다. 그래서 한번 더 인사할 것도 살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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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많이 아픈 것 같다는 소리에 자꾸 맘이 쓰였다.
갈비탕이라도 한 그릇 시켜 드릴까.
주말엔 모처럼 여유를 내서 찾아 뵈었다.
갈비탕은 관두고 어서 들오라, 깜짝 반기신다.
두통이 심해 맘도 무겁고 종일 외로웠다며...
기분이 밝아진 표정에 잘 찾아왔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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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같지가 않아.
아무 것도 생각 안 나. 바보가 된 것마냥...
벽에는 그 사이 요양보호사가 와서 만들어준 건지 색종이 고리가 걸려 있다.
가끔 멍할 때는 다 있는 거예요. 걱정 마시고, 짬짬이 책도 베끼고, 색종이도 접고...손을 쓰면 기억력도 좋아진대요.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 보면 어느새 한숨소리가 섞여든다. 솔직이 나 자신도 노쇠의 비애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저 같이 한숨이나 쉬자고 찾아온 게 아닌 이상, 마음을 다잡고 적당한 화제를 찾아 본다.
할머니, 공원에 있는 자전거타기 그거, 나는 못하겠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10번 하기도 힘들어요. 근데 할머니는 400번,500번 문제 없잖아요.
그렇지, 난 500번도 문제 없어.
봐요, 얼마나 대단해요. 자전거타기는 이 동네에서 아마 할머니가 최고일 걸요.
올라 타기에도 딱딱한 철제 의자에 바퀴도 없이 페달만 달려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동네 놀이터에 있는 자전거 모양의 운동기구를 말하는 것이다.
할머니라고, 처음부터 페달을 몇 백 번씩 거뜬히 돌렸을 리 없다.
그냥 매일처럼 어제보다 조금 더 한 것이, 이제 와 '페달 돌리기라면 자신있어! 'ㅡ로 변한 것이리라.
자전거를 그렇게 최고로 잘 타는 분인데, (그 어떤 것도) 문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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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앞에 장사 없어.
자연의 도리를 수용하다 못해 한탄이 깃든 이 말.
늙음이 용기를 앗아간다고들 말하지만, 사실 나는 젊었을 때는 지금보다도 쫄보였다. 내 삶에는 한정된 범주가 있다고 생각했다. 뭔가 도전한다는 건 나와는 상관없는 너무나 먼 얘기로 들렸다.
어느 학자는 말했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언제나 어떤 목표를 향해 도전하고 있을 때이다. 그런데, 사람은 좀처럼 도전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것은 '곤란'이라는 노고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해 보면 지혜와 힘이 솟아올라 생각보다 쉽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