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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종 종Mu Mar 29. 2024

영이와 플라타너스

황새가 아기를 물어온다


#. 플라타너스


사진 한 장.

야채가게 뒷벽으로 잎 달린 나무기둥이 우람하다.

비닐로나마 주랑을 만들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노점을 열 수 있게 된 건 언제부터일까. 플라타너스 입장에서 보면 노점상과 한 몸으로 묶여 가슴 위로만 하늘로 솟아 있는 셈이다.


사전을 찾아본다.

“플라타너스(platanus)는 그리스어의 'platys'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는데 '넓다'는 뜻이다. 즉, '잎이 넓은 나무'라는 의미이다. ”

그런데 플라타너스가 한글 이름으로 양버즘나무라니! 플라타너스 나무껍질이 얼룩무늬로 퍼진 것이 마치 버짐이 핀 것과 같아 버즘나무라고 불렀다고 설명되어 있다.

‘버즘(버짐)’이라면 잘 안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봄철에 영양이 부족할 때, 얼굴 한 군데쯤 버짐이 피고는 했지. 그게 누구 얼굴이었든 철이 들면서 우리는 알게 되었어. 영양이 부족한 탓이라고, 버짐 핀 얼굴이면 내심 부끄러워졌지. 70년대에 지방도시 십 대 여자아이들은 그렇게 철이 들어갔다.


그때의 여자아이 중 하나였을 영이에게 시장길 플라타너스는 너무도 특별하다.        

처음으로 눈여겨본 것은 십 년도 더 이전, 비닐 천정이 달린 시장 거리엔 플라타너스들이 천정을 뚫고 서 있었는데, 버스를 타고 지나면서 새들을 떠올렸다.

나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떠나는 새라든지, 저녁 무렵 집성촌의 사랑방처럼 유독 한 나무로 모여들어 시끌벅적하게 하루를 쏟아내는 새들의 의식이라든지... 그 속에 노점상 노파 아무개의 삶, 나물 한 봉지 과일 한 봉지 들고 가는 누군가의 하루, 어딘가의 창안에서 일어난 이야기, 혹은 아주 먼 옛날 아득한 땅에서 포효하던 영웅과 공주의 말발굽소리까지도 새들의 전설 속에 함께 흐를 것이라고 상상했다.   


영이는 언제부터인지 나무와 새를 하나로 묶어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하루벌이에 집착해 나무보다도 더 붙박이인 시장 사람보다 플라타너스가 훨씬 나아 보이는 것도 바로 새에 대한 환상 때문이다. 널따란 잎 그늘로 새들이 맘 놓고 드나들 적마다 플라타너스는 새들과 얼마나 많은 얘기를 나눴을 것인가.

새는 여리면 여린 대로 날짐승이라 사람 하나가 결코 담지 못할 세상 이야기를 어디선가 물어올 수 있다는 가능성, 새들의 지저귐은 바로 그런 이야기들이라고 믿기 시작했고, 새가 전하는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최상의 생물이야말로 나무라고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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