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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종 종Mu Mar 03. 2024

10 원짜리 동전, 2023년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사진, 캘리그래피 작품, 이현숙 작품


#.

대중이 모인 강당, 쉬는 시간이었다.  

복도에 나가 입을 축이고 내 자리로 돌아오다 동전을 얻었다.

뭐라 해야 하나.

얻었다라는 동사와는 달랐던 그 짧은 상황을.


간단히 말해, 대중 속의 한 사람인 모르는 여성이 바로 내 앞에서 동전을 줍고 너무 당황하여 그냥 내게 건네준 것이다.


눈에 띈 것이 동전이고,  10 원짜리라는 것을 순간에 알게 되었지만 못 본 체할 수 없는 본능으로 주워 들었는데, 주인을 찾자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보관하기도 뭐 한 습득, 그런 어정쩡한 찰나에 내가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아니, 그녀가 멈칫 서있는 이유를 감지해 버렸다. 그러면서 건네받은 동전이다.


더러울 텐데...

나의 결벽증은 나만 알기로 하고 동전 뒷면을 본다.


2013년.

주조 연도.


동전을 들어 주조 연도부터 보는 건 내 요즘 버릇.


그 해에 나는 뭐 했을까 

거기 찍힌 숫자의 시간으로 뒤돌아 가는 것이다.


2013년,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였다.  

 나라는 2월이라든지 8월이라는 기준 시점도 없이 논문심사를 거치고 한두 가지 요구절차를 체크한 뒤 12월에 학위증을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어이없이 이듬해 원단과 함께  자유의 몸이 되었는데.


학위란 그저 종이에 글씨 몇 자일뿐. 우주를 항해할 만한 비행체일 수는 없었다.

옛이야기 속에선 양탄자라도 타고 날지 않던가. 날려고만 하면.


그러나 내겐 축 늘어진 연령과 고교생 아들이란 무게 외에도, 나 자신이 살아내야 할 생에 대한 분명한 지도가 없었다.


지도가 없다는 그 배경엔

지도를 그려 찾아가고픈 보물에 대한 희구심이 없다는 거.

이 세상에 보물보다 더 숱하게 널린 염증 나는 추함을 심하게 예상하였다는 거.


2013년은

하염없는 유예였다.


사람들의 발길에 이미 불결해졌을 다보탑이 새겨진 누런 동전 10 원짜리가 나를 태워 10 년 전의 내 극심한 방황을 보여준다.


분명한 건 나는 이제 달팽이의 속도일망정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

여전히 눈앞에 음습한 인간 지대가 있지만,  어제만 해도 뚜렷이 자신의 밑바닥을 다 내보인 자가 내 앞에서 혀를 날름 댔지만, 이런 자가 하나 둘이 아니고 군중일 수도 시대일 수도 이 세상 대부분일 수도 있지만, 역겨운 건 역겨움을 만들어낸 그들 자신것일 뿐. 그것 때문에 단지 그걸 목격했다는 이유로  전진을 멈출 필요가 없다는 걸 나는 이제 안다.


동전을 가방에 넣으며 내심 되뇐다

'그래도 나는 오늘 또 부서질 것 같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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