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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리 Nov 26. 2022

뜨거웠던 텔레비전이 생각났다

첫째에게 평소보다 텔레비전을 많이 보여준 날이었다. 이제 그만 봐도 되겠다 싶어서 책을 읽으라고 하고 설거지를 하러 갔다. 15분이나 지났을까. 첫째는 책 읽고 둘째는 만화를 보겠거니라는 나의 생각은 터져 나오는 잔소리와 함께 와장창 깨졌다. 텔레비전과 책상 사이에 서서 초조한 표정으로 만화를 보고 있던 첫째와 눈이 마주치면서.


"티브이 그만 보라고 했지! 몇 분이나 지났다고 서서 몰래 보고 있니!"


그런데 잔소리를 시작하며 화를 내려던 그때 머릿속으로 한 장면이 휙 하고 지나갔다.


텔레비전 뒤를 만져보던 우리 엄마의 화난 표정과 혼날 거 뻔히 알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나의 모습.

그 두근거림, 무서움, 섭섭함 그리고 텔레비전을 더 보고 싶다는 아쉬움. 그 모든 감정들이 뒤섞였던 그때 그날이 정말 영화처럼 생각이 났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물건이지만 예전엔 텔레비전이 두껍고 오래 보면 뒤편이 뜨거워졌다. 얼마나 오래 보면 뜨거워졌는지는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마 30분 정도만 봐도 그랬던 것 같다. 엄마는 저녁때가 되면 아빠의 장사 시마이 그러니까 마무리를 도와주러 시장으로 갔다. 그럼 당연히 나랑 동생은 공부하는 척을 하거나 적어도 고생하는 부모님을 위해 뭔가를 하는 척을 했던 거 같다. 아무튼 텔레비전은 껐다. 그런데 왜 이렇게 텔레비전이 보고 싶었던지 참지 못하고 켜버렸다. 그때는 내가 보고 싶은걸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시간에 만화를 하던 것도 아니었는데 대체 뭘 본건가 싶지만 늘 텔레비전이 뜨거워 질만큼은 봤던 거 같다. 한참 뭔가를 보고 있으면 덜컹하는 핸드카 소리가 들리고 그럼 나는 급하게 리모컨의 꺼짐 버튼을 눌렀다.

대부분의 날은 그냥 넘어갔지만 가끔 엄마가 텔레비전 뒤편을 쓱 하고 만져보곤 했는데 그럼 그날은 엄청 혼나는 날이었다. 그 뜨거움은 숨길 수가 없었다. 전대를 풀지도 않고 화난 표정으로 텔레비전 뒤편을 만지던 엄마는 정말 무서웠다.

지금 생각하면 걸릴 거 뻔히 알면서도 못 참고 텔레비전을 보던 나도 참 웃기다. 그때는 엄마가 왜 저리 화를 내 나 했는데 힘들게 일하고 들어와서 애 둘이 공부도 안 하고 티브이나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화가 날 만하다. 지금 보니 엄마가 화가 별로 없는 편이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막 쏟아져 나오려던 잔소리가 다시 들어갔다. 나도 텔레비전 보는 게 그렇게 재밌었는데 애는 얼마나 재밌을까 싶기도 하고 예전엔 텔레비전의 뜨거움으로 애가 공부를 안 했구나 놀았구나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지금은 어떻게 알지?라는 쓸데없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정말 애가 하루 종일 유튜브 보고 싶어 하면 어떻게 조절하게 해야 하는 걸까. 육아는 정말 끝이 없다.


저 일이 있고 나서 엄마에게 첫째는 누워있는 걸 좋아한다며 애가 진짜 신기하다고 저런 애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다. 보통 아이들은 누워있는 일이 잘 없다는데 첫째는 텔레비전 보면서도 누워있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누워있고 낮에 심심해도 잘 누워있는다. 그게 너무 신경 쓰였다. 아직 6살인데 누워있기보단 놀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근데 엄마의 대답에 다시 한번 예전 생각이 났다.


"너 닮았네 너 하루 종일 누워있었잖아"


맞다. 나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누워있는 거 좋아해서 공부도 집에서 했다. 시험기간에 책 들고 누워서 암기하던걸 깜빡 잊고 있었다. 심지어 내 동생이 나를 잠만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루 종일 누워서 잔다고. 나는 잠을 자진 않았다. 그냥 누워서 뭔가를 하는 걸 좋아했을 뿐. 친정은 안방에 텔레비전이 있다. 텔레비전 앞에 제일 뜨끈한 자리가 내 자리였다. 잠잘 시간이 돼서 내 방에 돌아갈 때까지 나는 엄마, 아빠랑 누워서 텔레비전 보면서 수다를 떨었다. 첫째도 누워서 잠을 자진 않는다. 그냥 거실에 누워있다. 제일 좋아하는 게 누워서 텔레비전 보는 거다. 그냥 나를 닮은 거였다.


그동안은 너무 어려서 나랑 닮아서 그런 거라는 생각을 못했는데 이제 어릴 때 나의 모습이 보인다. 당황스럽고 신기하고 나도 그랬는데 잔소리만 했구나 하는 반성도 되고 마음이 복잡하다. 부모님이 이해가 되면서 아이의 마음이 동시에 이해가 된다. 결국 나도 우리 부모님처럼 텔레비전 많이 보는 거로는 잔소리를 하더라도 누워있는 거는 이해해 줘야 할 듯싶다.

밖에서는 이렇게 뛰어다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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