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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리 Dec 19. 2022

너 하지 말라고 했지!!

반성해야지

첫째가 동생과 같이 놀겠다며 한글 카드를 만들었다. 앞에는 '가, 나, 다, ' 같은 글자를 쓰고 뒤에는 그 글자가 들어간 단어를 썼는데 '너'카드에서 파하하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러다 곧 미안해졌다.


"너 하지 마라고 해지"


"너 하지 말라고 했지!"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특히 32개월 된 둘째에게 요즘 들어 더 하고 있다. 하지 말란 것만 골라서 하고 있는 장난꾸러기라 "이 놈 시키"와 "너 하지 말라고 했지!"를 말하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없다.

사실 둘째는 순한 아이다. 굳이 저렇게 말하지 않아도 "안돼!"라고 단호하게 몇 번 하면 말을 잘 듣는다. 그런데도 내가 더 무섭게 말하는 건 남자아이라서 그런 거 같다. 남자는 더 강하게 키워야 할 거 같고 그래도 될 거 같은 그런 생각이 내 무의식 중에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첫째가 카드로 나를 놀라게 하기 전에 둘째와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귀염둥이 둘째가 갑자기 "이놈 시키! 잘 못했지!" 라며 나를 나무라는 거였다. 심지어 허리에 손도 올리고 나를 타박했다. 내가 뭐를 잘못했던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허리에 손을 야무지게 올리고 "이놈 시키"라고 말하는 아이는 진지했다. 그때는 그게 너무 웃기기만 했다. 첫째는 아기 때도 누군가를 따라 하지는 않았어서 부모의 행동을 똑같이 하는 아이는 처음 봤다. 아이가 둘이지만 여전히 처음인 건 신기하다 보니 나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생각까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첫째의 한글 카드에 쓰인 선명한 글자에 가슴이 쿵 내려앉으면서 내가 얼마나 잘못했는가가 느껴졌다. 이걸 한번 느끼고 나니 아이가 '화내는 나'를 따라 할 때마다 얼굴에 열이 올랐다. 부끄러워서. 좋은 것만 보여주겠다며 아이들 앞에서 핸드폰도 멀리하고 책을 보는 노력도 하면서 왜 좋지 못한 모습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은 못했나 모르겠다.


요즘은 화를 내더라도 "너"라던가 "이놈"이라던가 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표정도 최대한 부드럽게 한다. 자애롭고 평온한 얼굴로 부드럽게 타이르는 것까진 아니고 그건 안될 거 같지만 어쨌든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도 쭉 조심해야지.




이 글은 거의 두 달 전에 쓰려고 했었다. 요즘은 왜 이리 바쁜지 도저히 쓸 시간이 없어서 미뤄두고 미뤄두다 드디어 오늘 마무리를 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언어습관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볼 수 있었다. 일단 34개월이 된 둘째가 "이놈 시키"라는 말을 따라 하지 않는다. 허리에 손 올리기는 몇 번 하더니 이제 안 하고 있다. 나도 말을 조심해야지라는 생각을 계속하다 보니 그렇게 화를 많이 내지 않고 있다. 덕분에 첫째는 내가 화가 난 거 같아도 편안해 보인다. 아이들이 그동안 또 훌쩍 자랐기 때문에 긍정적인 변화들이 나타난 것도 클 거 같다. 어쨌든 예전보단 좋아졌으니 유지할 수 있게 다시 한번 다짐을 해본다.


말은 정말 예쁘게 해야 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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