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

by 권정생 : #한국전쟁

by 유재은


나의 동화는 슬프다.
그러나 절대 절망적인 것은 없다.
서러운 사람에겐
서러운 이야기를 들으면 한결 위안이 된다.
그것은 조그만 희망으로
이끌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눈물이 없다면 이 세상을 살아갈 가치가 없다.

- 권정생


소박하고 맑은 영혼으로 여리고 시린 사람들의 마음에 따스한 위로가 되어준 작가가 있습니다. 평생 병으로 인해 힘들고 가난한 삶을 살아갔지만, <강아지똥>, <몽실언니> 등 어려운 세상에서 희망이 될 어린이들을 위해 빛이 되는 작품을 남겼지요.


학년에 맞는 책을 추천해 달라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직업상 전문적인 대답을 해야 하지만 도서관에서 고민해 고른 아이가 좋아하는 책이라면 마음껏 읽게 해 달라는 게 저의 생각이네요. 공부에 도움이 되는 비문학 책을 억지로 읽게 하거나 독서할 때마다 정독했는지 확인하다 보니 책과 멀어지게 된 아이들도 많이 보았어요. 학년에 맞는 책이라는 게 정해져 있을까요. 그림책은 유치원생이나 1학년 친구들만 봐야 하는 걸까요. 아는 집 아이가 저학년인데도 벌써부터 해리포터 같이 글밥 많은 책을 읽는다며 걱정하는 부모님들도 만났는데, 소화할 수 없는 책을 아이에게 떠안기지는 않을지 염려되기도 했습니다.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를 중학년 친구들에게 건네면 왜 그림책을 주냐며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여요. 하지만 이 책의 깊이는 어른들에게까지 긴 울림과 여운을 줍니다. 최근에 나오는 동화처럼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아니어서 지루하다는 아이들도 있지만, 책을 함께 다시 읽으며 등장인물들의 상황을 제대로 알고 나면 놀라면서도 이내 숙연해져요.


치악산 으슥한 골짜기의 눈이 녹으며 새봄이 찾아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바람기 없는 고요한 달밤에 오푼돌이 아저씨가 부스스 일어나자 가만히 앉아 있던 곰이가 인사를 해요. 둘은 그동안에도 그래왔던 것처럼 하얀 둥근달을 바라보며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쩔 수 없이 할머니를 두고 피난을 떠나야 했던 겨울밤을 시작으로, 폭격을 맞아 쓰러지던 피난길에 대해 말하며 무서워하던 곰이를 오푼돌이 아저씨는 따뜻하게 안아줘요. 그 후 아저씨는 인민군으로서 국군과 싸운 이야기를 들려주지요. 사는 곳이 달랐을 뿐 같은 민족의 똑같은 사람이었다는 말을 하는 아저씨의 가슴에는 축축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곰이도 귀 뒷머리에 핏덩어리가 엉켜 있었고요. 그런데 이 모든 게 30년 전 일어난 일이었어요.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는 1951년 1월 강원도 치악산에서 흰 눈에 묻힌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지요.


이 책은 액자식 구성으로 우리가 잘 아는 옛 동화인 <해님 달님> 이야기도 나옵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와는 내용이 조금 다른데 남매에게 분열을 가져오는 두 호랑이 이야기는 6.25 전쟁 때의 정세를 풍자하고 있어요. 1980년 군사 독재 시대 때 씌여 사후 출간되었다는 게 안타깝지만, '빼앗는 임금도 없고, 전쟁에 쫓기지 않는 세상'을 시로 염원한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참혹한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무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난 지 아직 70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전쟁을 머나먼 이야기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되네요. 모자란 사람을 반푼이, 혹은 오푼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의 우직함이 참사람의 지혜를 전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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