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안네마리 노르덴 : #잔소리
명절을 부담스러워하는 이유 중 잔소리를 꼽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공부는 잘하는지, 진로는 정했는지, 사귀는 사람은 있는지, 결혼은 언제 할 것인지, 아이는 왜 안 낳는지, 둘째는 또……. 이미 많은 매체에서 이런 말에 대한 좋지 않음을 언급해 왔지만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잔소리는 왜 쉽게 사라지지 않는 걸까요. 오랜만에 만나 대화 주제를 찾기 힘들다는 건 이해하지만, 그것이 과연 상대에 대한 관심과 진심 어린 걱정을 표현하는 것일까요.
우리들은 어릴 때부터 잔소리를 들으며 자라왔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잔소리하는 어른으로 살아가게 되지요. 부모뿐만이 아니라 연인, 부부, 상사, 지인 등에게 듣게 되는 잔소리는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하는 말'이라는 뜻처럼 결코 유쾌한 말은 아닙니다. 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좋은 의도가 담겨 있더라도 받는 이에게 간섭처럼 여겨진다면 그것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게 돼요. 그런데 잔소리 없는 날을 갖게 된 소년이라니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제목만으로도 서로 가져가겠다고 하는 책 중 하나가 바로 이 책에요. '잔소리 없는 날'. 상상만으로도 기쁜지 싱글벙글한 얼굴로 책을 들고 가며 내용을 살짝 훑기도 하지요. 지나친 간섭으로 힘들어하던 주인공 푸셀은 하루만이라도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날을 제안합니다. 이에 한숨부터 쉬며 망설이던 푸셀의 부모님은 아들의 간절한 눈빛에 월요일 하루 동안의 잔소리 없는 날을 허락해요.
드디어 월요일 아침, 푸셀은 세수도 하지 않고 아침으로 자두잼을 맘껏 퍼먹으며 자유의 하루를 시작하지요. 학교에 가서도 수업이 끝나기 한참 전에 교실을 나선 푸셀은 부모님을 테스트하기 위해 오디오를 외상으로 사려하지만 잘 되지 않자 집으로 돌아가 엄마에게 파티를 열겠다고 해요. 하지만 갑자기 열리는 파티에 올 수있는 친구들이 없자 밖으로 나가 처음 보는 아이들을 초대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파티에 참석하게 된 사람은 공원에서 술을 마시던 술주정뱅이 아저씨뿐이었어요. 심지어 푸셀은 자정이 되기 전까지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자겠다고 합니다. 울타리 너머에 공동묘지가 있는 으스스한 곳에서요.
잔소리 없는 날 푸셀은 친구에게 입냄새 난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횡단보도에서는 차에 치일 뻔했으며 낯선 사람을 집에 들이는 위험한 행동을 하게 되었어요. 다시는 맛볼 수 없는 자유의 날, 푸셀이 조금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는 없었을까요.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푸셀이 깨닫게 되었지도 궁금하네요.
독서 후 잔소리를 주제로 한 동시 쓰기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어요. 어떤 아이는 진짜 마음을 쓴 시와 엄마에게 보여주기 위한 시를 따로 쓰기도 했는데, 모두가 입을 모아 잔소리가 싫다고 하면서도 잔소리하지 않는 건 진정한 엄마가 아니라고도 말했어요. 그래도 어른이 되면 자신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아이가 대부분이더라고요. 물론 자신이 당한 만큼 자식에게 더 많이 해주겠다며 개구진 웃음을 짓는 아이도 있었지만요.
저 역시 잔소리하지 않는 부모가 되고 싶었습니다. 책 속에 나오는 현명한 부모처럼 우아한 모습을 상상했고요. 그런데 현실은 다르더라고요. 어느새 쏟아 놓는 잔소리와 돌아서며 후회하는 모습의 반복. 딸들이 고1과 초6이었던 어느 날에는 블로그에 이런 글도 써서 올린 적이 있네요.
늘 비슷한 상황.
왜 이리도 같은 말을 하게 할까
벌겋게 달아오르지 않고
오늘부터
잔소리 대신
사랑해
라고 말해야겠다.
뜬금없이 잦아진 내 고백에
당황하더라도
결국은 웃게 될 너이니까.
그런 웃음 보면
내 마음도 다시 봄바람처럼
살랑댈 테니까.
얼마나 고백하고
또다시 미지근해질지 모르지만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
너와 나 사이에
작은 오솔길 하나
나누게 될 테니까.
그래서 마음의 길이 생겼냐고요?
음, 조그마한 오솔길 하나.. 는 생기지 않았을까 믿습니다. 물론 저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