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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은 Nov 13. 2024

노른빛

_ 고마웠어요


# 노른빛
 : 노른자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한 빛.



마음을 안온하게 해주는 카페가 있었어요. 그곳에만 가면 머릿속에 노른빛이 켜진 듯 글이 술술 써졌지요. 의자가 편하거나 멋들어지게 꾸며진 곳은 아니었지만 옷으로 치면 꾸안꾸 스타일이라고나 할까요. 무심한 듯 감각이 스며있는 인테리어는 되레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높은 층고와 전면창은 마음을 탁 트이게 해 주었고 덕분에 사유의 세계가 확장되어 문장을 불러오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흰빛의 페인트로 칠한 벽은 노란 조명과 어우러져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고, 몇 장의 사진으로 여백의 미를 담고 있는 벽을 따라 테이블이 놓여있었고요. 텅 빈 중앙 덕분에 환해진 시야는 개인적인 공간처럼 느껴지게 해 주었지요.


처음이었어요. 한 카페를 그토록 좋아하게 된 것이 말이에요. 커피 맛은 말할 수도 없었지요. 카페 이름이 붙여진 라떼는 우유의 크리미한 맛과 시나몬 설탕이 어우러져 그동안 마셔본 것 중 최고였어요. 달달한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이 라떼만큼은 매주 마시지 못하면 서운할 정도였답니다. 일주일에 최소 한 번은 꼭 들러서 글을 썼어요. 그곳에서의 한 시간은 다른 곳에서 다섯 시간 이상 걸리는 원고 분량을 쓸 수 있게 해 주었으니까요. 글을 쓸 때는 음악을 듣는 편인데 그곳은 음악마저도 단어를 춤추게 했지요.


운영하는 젊은 부부가 손님을 마주하는 적절한 거리 두기도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습니다. 몇 개월을 일정하게 들르다 보니 미소 짓는 눈빛에서는 서로를 알아봄이 분명한데 그 이상 깊이 다가오지 않는 게 좋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문득 보이는 세심한 배려가 마음을 따뜻하게 했고요. 처음으로 한 카페가 오래오래 운영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달 만에 카페에 들렀어요. 카페 운영시간이 유동적이며 휴무일도 생기더니 이내 임시 휴무가 이어졌기 때문이에요. 다시 오픈했음을 알고 설렘으로 왔는데 조금 다르게 느껴지네요. 주인 부부는 커피를 내리거나 손님을 응대할 때를 제외하고는 커튼으로 살짝 가려진 주방에 있다가 손님의 인기척에 나오곤 했는데, 오늘은 한참을 카운터에 서 있으며 불러보아도 나오는 이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늘 앉던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꺼냈어요. 누군가 나오면 그때 주문하려고 했지요. 인테리어는 그대로였지만 왠지 크게 달라진 기분이 들었어요. 우선 음악의 분위기가 달라져서 작업에 바로 들어가기 어려웠지요. 주인이 바뀐 거였어요. 아직 초창기여서 주방 분위기도 어수선했고요.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선한 미소의 따뜻한 주인 부부가 주방에서조차 손님들을 위해 얼마나 세심한 배려를 했는지 말이에요. 전에는 주방 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리는 줄 몰랐거든요. 너무나도 좋은 분들 같아서 작업을 위해 너무 오래 있지 않으려 했고 주말에는 장사를 위해 가지 않으며 마음으로 응원했는데 걱정스러웠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다는 말을 잠시 나눈 적이 있었거든요. 병원에 가야 해서 일찍 닫는다며 구워둔 빵을 손님들에게 나눠 주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혹시라도 이곳에서 무언가를 이루어 낸다면 그때는 부끄러움을 참으며 책을 선물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무용해도 좋은>이라는 브런치 북의 구상과 시작도 이 카페가 큰 힘을 주었으니까요. 덕분이라며 책과 함께 무언가를 선물해 드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토록 좋아했던 최애 커피 맛도 늘 마시던 것과 달랐습니다. 닮은 맛의 다른 커피 같다고나 할까요. 좋아했던 공간에서 바뀐 것은 운영자뿐인데 낯익은 듯 새로운 카페에 온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래서인지 첫 문장을 불러오는 데도 애를 먹었고요. 봄여름가을을 보내서 카페의 겨울을 기대했는데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고요한 다정함을 지닌 따스한 주인장들을 위해 마음을 글로 남깁니다. 세 계절을 함께한 고마움을 가득 담아서요.



(202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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