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do you want?

by Passion fruit

다시 한국이다. 다시는 없을 줄 알았던 출장을 한번 더 오게 됐다. 홍콩 집에는 두꺼운 겨울 잠바가 없다. 부피가 커서 짐이 되고 곰팡이가 생기기도 쉽다. 장모님 댁에 겨울 옷을 두고, 겨울에 한국에 오면 먼저 장모님 댁에 간다. 하지만 요즘 날씨는 그리 춥지 않아서 있는 옷으로 적당히 껴 입어도 충분히 견딜만하다.

내 직무 자체가 없어지고 가장 당황한 건 한국의 동료들이다. 당장 조직이 개편되어서 교육, Team building과 같은 지원이 절실한 때다. 아직 내가 회사에 있기는 하지만, 지금 주어진 시간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라는 것이지 끝까지 열심히 일하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한국 파트너 Y상무님에게는 기존의 업무에 이 일까지 더해지는 게 쉬운 상황은 아니다. Y 상무님과는 서로 신뢰하는 사이이기에 터놓고 종종 대화를 하는데, 최근 조직 개편과 관련된 워크숍에 대해 얘기하다가, 자연스럽게 조언을 드리게 되었고 그때 마침 업체와 연락이 닿아 우연히 3자 미팅을 하게 됐다. 중간에서 조율을 하던 중 이번 워크숍은 나도 함께하여 외부업체와 co-facilitation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한국에 오게 됐다.


워크숍은 준비가 80%다. 목적과 결과물을 명확히 하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과정과 도구를 계획하는 것이 80% 정도는 된다. 준비를 위해 그 업체의 본부장님과 3번 정도 추가적인 미팅을 하고 과정 준비를 완료했다. 실제적인 과정은 업체 측에서 준비했지만, 조직의 맥락과 기대를 명확히 하는데 주로 도움을 드렸다. 나중에는 결과물 정리와 결과보고까지 내가 했다. 사실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왜 했냐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사내 교육담당자로 career를 시작한 지 벌써 12년 정도가 됐다. Sales와 MKT을 하다가 Career를 Trainer로 확 돌렸다. 우리 업계에서는 보통, Sales를 경험한 직원들 가운데 Training을 뽑는다. 그리고 Trainer에서 Sales Manager 또는 MKT으로 가는 게 보편적인 경로인데, 나는 MKT에서 Training으로 거꾸로 갔다. 당시 나의 이런 결정을 마케팅 이사님은 적극적으로 말리셨다. 그쪽 커리어가 그리 밝지 않다, 사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후회할 거다 등 정말 확신에 차서 말씀해 주셨다. 모두 부정적인 의견이지만 사실이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Trainer 커리어가 뻗어가면 어디까지 가겠나. 다들 MKT을 하고 싶어 난리고, 여기에서 경력을 잘 쌓아나가야 매니저도 되고 디렉터도 되고 쭉쭉 뻗어나가는 건데, 그걸 마다하고 Training으로 간다니. 하지만 나의 결심은 굳건했다. 지난 MKT 생활을 통해 나와는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남들이 옳은 길이라고 해도 내가 싫으면 그만, 정해진 길은 없고 사람마다 각자의 길을 간다. 회사를 옮겨가며 Training에 입문했다. 대신 마음속에 결심을 했다.


"Trainer로 회사 다니면 얼마나 다니겠어. 회사에 있는 동안 잘 준비해서 전문 HRD업체로 가자. 그게 가야 할 길이다."


그 뒤로 일을 배우면서 항상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Training 중 어떤 분야를 파고들어야 할까? 어떤 분야가 나에게 잘 맞고 또 가치가 있을까?"


그러던 중 Facilitation을 접하게 됐는데, 이 만남을 계기로 facilitation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고, 회사의 변화하는 상황가운데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들을 만들어 냈다.


"Facilitation 좋은 건 알겠는데, 그게 다는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역시 training이 좋아요."


상대적으로 Trainer 경력이 짧았던 내가 오히려 facilitation을 받아들이기는 더 쉬웠던 것 같다. 동료 trainer들도 모두 같이 교육을 받았지만, 나만 유독 더 facilitation에 끌렸다. 그러던 중, 조직 내 소통 워크숍을 담당하게 되었다. 아직 facilitation 초보였지만 과감한 계획을 세웠다. 도입부 계획은 잘 세웠지만, '중간 논의는 정해지는 논의 주제의 개수에 따라 소그룹을 만들고 소그룹 별 논의 도구는 그 자리에서 정하리라.'는 아주 유연한 계획 없는 계획을 들고 갔다. 그리고 워크숍은 정말 잘 진행됐다. 동료들도 facilitation의 힘을 다시 봤다며 힘을 실어 주었다.


2016년 싱가포르에서 IAF(International Association of Facilitator)로부터 CPF(Certified Professional Facilitator) 자격을 획득했다. 1년 반 정도를 집중적으로 준비했던 것 같다. 이때의 경험과 성취들이 지금 이곳 홍콩에서 Asia 국가들의 Leaning & Development를 담당하는 자리까지 나를 이끌어주었다.


살다 보면, 무심한 듯 지났던 어떤 장면이 잊히지 않고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다. 한 10년 전 일이다. 개인적으로 그래도 가까웠던 한 영업부 부장님과 식사를 했다. 부장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조직 내에서의 평가가 좋지 않았고, 계속 몰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부장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정도 됐던 것 같다.


"J과장, 나도 잘 모르겠어. 남들 대학 갈 때 대학 갔고, 남들 취직할 때 취직했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서 더 빨리 승진했고, 그렇게 살아왔는데, 막상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더라고."


사실 그때 하신 말씀이 그 세대의 많은 직장인들의 상황과 마음을 대변하는 말로 들렸기에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남아있던 기억이 공감을 넘어서 나의 처지로 다가온다.


"It's very important to know what I want!"


진리와 같은 말이다. 나는 정말 무엇을 원하는가? 꽤 오래전 NLP교육에서도 들었던 내용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명확하고, 그와 관계된 일을 하고 있고, 그와 관계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면 그 목표를 이룰 가능성이 높아진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관심 있어하는 일은 뭘까?




Facilitation이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교육보다는 워크숍이다. 비전 워크숍, 문제 해결 워크숍, 소통 워크숍, 갈등 해결 워크숍 등, 정해진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목적을 가지고 참여자들이 과정을 거쳐 공동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열린 세션이다. Job title이 Learning & Development이지만, 교육 업무가 주가 되다 보니, 늘 아쉬움을 느꼈었다. 그래도 때때로 기회를 잡기도 했다. 그런 때면 나의 몰입과 공헌은 120% 일어나곤 했다. 이번 워크숍은 외부 업체와 co-facilitation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준비 과정부터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누며 생각의 차이, 과정을 구성하는 관점의 차이를 배울 수 있었다. 진행 과정도 함께하며 나의 facilitation habit을 돌아보며 또 배우고 수정하는 기회가 됐다.


난 워크숍이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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