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 물장난

그토록 소중한 존재-아이가 보는 세상

by Luna Sea


2. 물장난


유독 물장난을 좋아하는 아이는 틈만 나면 정수기 물을 받아서 여기저기 흘려놓길 좋아한다.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노는 건 스릴이 부족한 모양인지 거실 곳곳에서 엄마 몰래 은근슬쩍 물장난을 한다. 보통은 몰래 장난치다 엄마가 발견하기 전에 (나름) 증거를 치우고 완전범죄를 시도하지만(결국 나중에 꾸지람을 듣는다), 가끔은 장난치는 장면을 들켜버린다. 그럴 땐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 얼마나 우스운지. 엄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려다가 웃음이 터지기 일쑤다.


한 번은 정수기 물을 담은 양손 컵에다가 손을 푹 담그고 시원하게 테이블 쪽으로 부어버린다. 슬쩍 뒤를 돌아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잠깐 흠칫하더니 이내 당당하게 말한다.

"물이 흘렀어! 내가 컵에 담았는데 흘렀지 뭐야."


"정말? 물이 혼자서 흘렀어?" 하고 나는 못 본 척 되물어본다.


"응, 나는 물을 떠 왔는데 물이 컵에서 요렇게 요렇게 흘렀어."라며 최대한 엄마 눈치를 보는 똥그란 눈이 깜빡거리며 웅얼거린다. 결국엔 장난에 거짓말까지 혐의가 추가되어 엄마의 호통이 더해진다. 그러면 아이는 통곡을 하고 만다.


한 번은 안방에 가습기에서 나오는 수증기에 관심이 팔렸다. 그 전날 밤에 가습기 물을 채워 넣는 모습을 지그시 쳐다보기에 설명을 해줬다. 가습기 통에 물을 채워 넣어서 꽂아둬야 수증기를 뿜어낸다고. 그랬더니 그걸 해보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가습기를 틀어놓고 한참을 앞에서 기다리길래, 그저 수증기랑 노는 게 좋은가보다 생각했다.

한 삼십 분이 지났을까, 설거지를 해놓고 티브이를 틀고 소파에 앉았는데 조용하던 안 방에서 덜거덕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뛰어들어가 보니 가관이었다. 물로 흥건해진 바닥과 엄마 목소리에 덩달아 놀란 아들 손에는 (흘린 물을 닦기엔 턱없이 모자란) 갑 티슈 두 어장이 쥐어진 채 정지화면이 되어 있었다.


화장대 위에 있던 가습기가 바닥에 내려와 있고, 엉거주춤 양손에 쥔 티슈는 이미 물에 녹아 없어질 지경이었다. 가습기 물통은 뚜껑이 꼭 닫힌 채 뒤집혀 나뒹굴고 있었다. 그나마도 뚜껑을 못 열어 물통 중간 패인 홈에다 물을 조금 담아왔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물통을 뒤집에 끼우려다 미끄러져 물이 쏟아지고 그걸 닦으려고 티슈를 집어 들었는데 엄마가 딱 들어온 거다.


잘못인 줄 알고 하는 짓궂은 장난이라면 엄마가 나타나기 무섭게 '이래서 이래서 이렇게 됐어.'라는 변명이 나올 텐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몰두하다 벌어진 일이라 그나마 (말도 안 되는) 변명거리도 생각지 못했나 보다. 삼십 분 동안 엄마 도움 없이 가습기에 물을 채우려고 애쓴 모습이 얼마나 눈에 선한지. 게다가 '내일은 물이 떨어지면 내가 갈아둬야지' 하고 다짐했을 아들의 마음이 짐작되어 웃음이 나왔다. 하루 종일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아들과 함께 일시 정지된 나는, 정신을 차려 뒷정리를 하고 다시 한번 가습기에 물을 받고 켜는 순서를 좀 더 상세하게(어제는 물통 뚜껑을 열고 닫는 걸 알려주지 않았다) 설명하고 예행연습까지 마치고서야 모든 상황이 끝났다.


호기심과 재미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그 순간이 어쩐지 엄마의 눈엔 보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웃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갈등한다. 화도 내고 훈육도 하고 어쩔 땐 같이 웃고 만다. 끝도 없이 저지르는 장난과 실수는 자라는 증거일 테지. 치우는 수고로움은 차치하고, 하루가 다르게 아이가 '사람'이 되는 과정은 마냥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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