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
뚫을 수 없는 창, 뚫리는 방패
그러나, 그러나, 이런 말은 어떤가.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장미꽃을 주고받는 식의, 삶의 화려한 포즈는 우리에게는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가난한 삶이란 말하자면 우리들 생활에 절박한 포즈 외엔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는 삶이란 뜻이었다.
돼지갈비집의 그 어수선한 분위기, 반드시 한 패의 손님 정도는 술병을 내던지고 접시를 뒤집어쓰는 싸움판을 연출하던 거기, 고기를 더 시키려면 있는 대로 고함을 질러야 함이 너무도 당연하던 거기에서는 비록 전쟁터 같긴 했어도 지루하지는 않았다. 하긴 포탄이 터지고 총알이 쉭쉭 나는 전쟁터에서는 누구라도, 결코, 지루할 수 없는 법이다.
만약 누군가 지금 대문을 들어서서 방 쪽을 쳐다본다면 아마 이런 그림이 보일 것이다. 환하고 어둡고, 다시 환하고 어둡고, 다시 환한 빛의 그림, 두 번의 어둠은 욕실과 부엌이 자아내는 것이고 세 번의 환한 빛은 세 명의 가족이 각각 하나씩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언젠가부터 늘 이랬다. 두 개의 방을 비우고 하나의 방에 모여서 단란한 풍경을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사람들처럼 늘 이랬다.
그때나 지금이나 진모처럼 갈치를 탐하는 식성이 아닌 탓에 내가 이모부에게 관대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쓰러지지 못한 대신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극대화시키는 것이었다.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 거대한 불행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훨씬 견디기 쉽다는 것 을 어머니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생애에 되풀이 나타나는 불행들은 모두 그런 방식으로 어머니에게 극복되었다.
"너 이런 말 알아? 결혼은 여자에겐 이십 년 징역이고, 남자에겐 평생 집행유예 같은 것이래. 할 수 있으면 형량을 좀 가볍게 해야 되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해. 열심히 계산해서 가능한 한 견 디기 쉬운 징역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사랑은 그 혹은 그녀에게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으로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이랬으면 좋았을 나'로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노력과 함께 사랑은 시작된다. 솔직함보다 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죽는 날까지 사랑이 지 속된다면 죽는 날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지 못하며 살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 키고 나를 왜곡시킨다. 사랑은 거짓말의 유혹을 극대화시키는 감정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보여줄 수 있는 날이 오긴 올 것이었다. 서로 사랑하므로 결혼한다면, 결혼으로 서로의 사랑이 물처럼 싱거워진다면.
행방불명으로 먼 세상을 떠돌던 한 인간이 속세로 귀향하기에 이만한 날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이런 말을 알고 있다. 인생은 짧다고, 그러나 삶 속의 온갖 괴로움이 인생을 길게 만든다고. 아버지는 참으로 긴긴 인생을 살았다. 그것이 진정 아버지가 원했던 삶이었을까.
마지막으로 한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