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는 믹스입니다만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나는 안 보이는 타로의 모습을 상상한다. 녀석은 홀로 남은 집에서 식구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를 물색할 것이다. 짐작건대 내 침대 위이리라. 거실 소파나 아이들 방의 푹신한 초록 의자도 가능성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곳은 늘 나의 온기와 냄새가 배어 있는 침대일 것이다. 나는 그곳에 타로가 얌전히 앉아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녀석은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외로움을 견디고 있었다.
어느 날은 집에 돌아와 보니 타로가 돌돌 말아놓은 이불 속에 들어가 있었다. 단단하게 감겨 있는 이불 뭉치 속에 어떻게 파고들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며 들어갔을까. 그 이불 속에서 녀석은 나의 냄새에 기대어, 자신을 세상의 모든 소리와 시선으로부터 숨기려 했던 것일까. 조용히, 그렇게 작은 몸을 웅크린 채 가족의 부재를 견디는 모습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마주한 녀석의 가장 깊은 외로움이었다.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을 들켜버린 민망함에 녀석의 눈빛과 곧추세운 두 귀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미안하거나 당황할 때마다 녀석이 보이는 특유의 태도가 있다. 머리와 꼬리를 땅에 닿을 듯이 내리고, 마치 택견 스텝을 밟는 듯 갈지자로 슬렁슬렁 걸어오는 것이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미안함과 반가움, 어쩌면 멋쩍은 변명까지 담겨 있는 듯한 그 걸음걸이는 녀석의 고유한 언어였다.
야단맞은 날 타로는 종종 공부방 책상 밑으로 숨는다.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서. 그러면 누군가 나서서 “누가 우리 타로를 혼냈쩌?” 하며 억울한 편을 들어주며 몇 번을 부르고 달래야 겨우 그 구석진 곳에서 녀석은 비로소 나온다.
행복할 때 짓는 녀석의 또 다른 언어가 있다. 내가 손에 좋아하는 간식을 들고 있을 때면, 녀석은 평소의 차분함을 잃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간식을 향해 코를 킁킁거리고, 기쁨을 참지 못해 "하아하아하" 웃음소리를 내뱉는다. 그 눈빛은 마치 "빨리 주세요!" 하고 외치는 듯하고, 온몸으로 뿜어내는 기대감은 보는 사람마저 행복하게 만든다.
나는 타로를 보지 않고도 소리만으로 집 안에서 녀석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훤히 알 수 있다. 침대에서 뛰어내릴 때 내는 '툭' 하는 발자국 소리, 거실을 가로지를 때의 짤막한 발소리까지, 녀석의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나는 소리는, 생각만으로도 미소 짓게 하는 일상의 익숙한 배경음악이 되었다.
우리 사이에는 그 어떤 말보다 더 진실한, 우리만의 비밀스러운 언어가 흐르고 있었다. 녀석은 자신의 외로움을 숨기는 법을, 우리는 녀석의 숨겨진 마음을 읽어내는 법을 배웠다. 이 특별한 언어는 세상의 모든 반려인들이 저마다의 방식과 소리로 만들어가는, 자신들만이 아는 방식일 것이다. 녀석의 꼬리 흔들림, 가쁜 숨소리, 그리고 웅크린 몸짓을 통해 우리는 삶의 가장 순수한 기쁨과 슬픔을 배운다. 그렇게 우리는 말로 다하지 못하는 사랑을 온몸으로 주고받으며 가장 진실한 가족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