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은석은 집에서 혼자 노는 시간이 늘었다. 여전히 은석이는 은수의 할머니를 좋아하고 할머니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했지만 은수가 없는 상황에서 할머니만 졸졸 따라다닐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은수 못지않게 은석이를 귀여워하고 아껴주었지만 은석은 마치 마음 한 구석에 커다란 구멍이 난 것만 같았다.
은석이 마음 붙일 데 없어 적적해하는 게 할머니 눈에도 안타까이 여겨졌는지 할머니는 은석의 엄마에게 은석이 벗 삼을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다 주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마침 윗동네 검둥이가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은석의 엄마는 한달음에 달려갔다.
엄마는 그날로 통통하게 살이 붙은 강아지 한 마리를 은석의 품에 안겨주었다. 강아지는 온몸에 검은 털을 지녔지만 유독 두 눈 위로 누런색 털이 콩알만큼씩 동그랗게 박혀있었다. 주둥이가 넙죽하니 순하게 생긴 토실토실한 강아지에게 은석이네 가족은 '복실'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복실이가 은석의 집에 온 첫날, 복실이는 섧게 울었다. 마룻바닥에 놓아둔 작은 상자 안에는 늘어지고 닳아 구멍이 생긴 엄마 난닝구와 하도 입어서 무릎에 살이 비치기 시작하고 엉덩이 부분이 반짝반짝 윤이 나고 오금쟁이 주름이 드글드글한 아버지 바지까지 두툼하게 깔려 있었다. 은석이는 복실이가 좋아할 거라고 자신하면서 복실이를 상자에 넣어주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복실이는 상자에 들어가면 큰일이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은석이 손에서 놓여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은석이는 강아지를 안아 방에 들이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입장에선 안될 일이었다. 어차피 마당에서 자고 놀아야 할 개라면 애초에 밖에서 자는 거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는 게 아버지의 생각이었다. 복실이는 방문 앞에서 문을 긁으며 밤새 울었다.
복실이는 은석이와 창호지를 바른 문을 사이에 두고 머리를 맞대고 잠이 들었다. 은석의 엄마가 일어나는 기척에 퍼뜩 잠이 깬 복실이가 다시 방문을 긁으며 낑낑거렸다. 은석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부수수 일어나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나가자 복실이가 엉덩이를 씰룩씰룩 꼬리를 흔들었다.
은석은 은수가 없는 시간에는 복실이를 품에 안고 놀았다. 복실이는 은석을 저의 엄마 마냥 따랐고 은석이 가는 곳은 어디든 따라다녔다. 복실이는 얼마나 씩씩하고 영리한지 얼마가 지나자 혼자서도 저의 집을 찾아들어가 새근새근 잘도 잤고, 은석이 보이지 않으면 으레 껏 은수의 집을 찾을 줄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