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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비실

어쩌면 내가 그런 사람?

by 작은꽃
KakaoTalk_20250709_190956159.jpg 등장인물: 얼음, 커피믹스, 혼잣말, 텀블러, 케이크



윌라 오디오북으로 들은 소설. 이번 주 토요일이면 윌라 오디오북 무료 사용기간이 끝난다. 흑


책의 표지가 특이하고 눈에 띄었다. 역시 책은 표지가 중요하다. 제목와 표지 그림 그대로 탕비실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이야기다. 탕비실이란 여러 사람이 같이 쓰는 공간인데 이런 곳에는 항상 눈에 띄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안 좋거나 특이한 쪽으로.


나는 좋아하는 것도 많지만 싫어하는 것은 더 많다. 특히 사람들의 어떤 특정 행동이 싫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길거리에 침 뱉는 거, 중간에 말 끊는 거, 새치기하는 거, 운전할 때 코너에서 너무 천천히 도는 거, 안 웃긴데 큰 소리로 웃는 거, 여럿이 모여서 큰 소리로 말하는 거, 여럿이 모여서 웃고 떠들면서 친한 척하는 거, 큰 소리로 전화받는 거, 쿵쿵거리거나 신발 소리 내면서 걷는 거, 쩝쩝거리면서 먹는 거, 침 튀기는 거, 나이 많은 티 내는 거, 개 목줄 풀어놓고 '안 물어요' 하는 거, 음식점 주방에서 마스크 안 하고 음식 만드는 거, 음식점에서 마스크 안 쓰고 서빙하면서 자꾸 말하는 거, 먹기만 하고 안 치우는 거 등등 계속 말할 수 있다.


우리 학교에도 선생님들을 위한 탕비실 같은 공간이 있다(이하 그냥 탕비실이라고 하자). 이곳에 이상하거나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아... 그러니까 어디든 또라이가 한 명은 있는데 내 주변에 없다면 그 또라이가 바로 나! 라는 말처럼 어쩌면 내가 그 싫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침에 라면을 끓여주는 선생님 J가 계셨다. 탕비실에서 전기냄비에 라면을 끓여 "어서 와서 먹어!"하고 교실로 전화를 하셨다. 나는 모닝라면을 매우 좋아한다. 쌀쌀한 날씨에 아이들이 오지 않은 학교에서 끓여 먹는 라면은 무슨 맛이냐면...'안 먹어봤으면 말을 하지 마'. 처음부터 안 먹었으면 안 먹었지 한 번만 먹을 수 있는 맛이 아니다. 나는 '오늘은 라면 안 끓이나' 하고 전화를 기다리곤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아침에 학교에서 라면 끓여 먹고 냄새 풍기는 나와 J가 극혐이었을지도 모른다.


가볍게 듣고 싶어서 고른 책인데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작가는 '싫어하는 대상의 기분을 한 번쯤은 상상해 보는 것'으로 싫음을 대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렇게 싫음의 감정을 소화시키기로 했다고.


나는 좋음과 싫음이 분명한 편이고 감정이 얼굴에 잘 드러나는 편이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너는 너무 투명해'라고 했다. 언뜻 들으면 좋은 말인가? 싶지만 아니다. 내 속이 빤히 들여다보인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아이를 셋 키우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런 나의 성향이 사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 내가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뭐 딱히 좋은 상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 집 애들은 엄마가 제일 좋고 착하다고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내가 천하의 나쁜 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가의 말처럼 '우리 모두와 닮아있다'. 비호감 대표로 뽑혀 관찰 프로그램에 섭외되었지만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지랴. 나도 학교 탕비실 냉동실에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는 도넛상자를 오랫동안 방치했었다. 잘 보면 이런 사람 많다. 커피믹스를 한 두 개 주머니에 챙겨 오는 것은, 부끄럽지만 가끔 하는 일이다. 이 책의 저자가 싫어하는 상대의 기분을 생각함으로써 싫음을 소화시킨다면, 나는 다음과 같이 싫음을 소화시키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되게 특이하고 까다로운 사람이지 않을까?'하고 상상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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