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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Apr 19. 2024

아마추어의 어설픈 목록 선택

[북리뷰] 이지민. 브루클린 책방은 커피를 팔지 않는다. 2022.

1. 브루클린 책방은 커피를 팝니다.     


 따라서 머리말과 목차를 살펴보는 것을 끝으로 책장을 덮어도 될 듯합니다.

 제가 굳이 이 책을 펼쳐진 건 “브루클린 책방이 커피를 팔지 않고도 지속가능할 수 있는 이유”를 찾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꽤나 진지한 고민거리 중에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인구 830만의 뉴욕시티에는 400여 개소의 책방이, 인구 250만의 브루클린에는 200여 개소의 책방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인구 대비 책방 수만 따져 보면 브루클린의 책방수가 좀 압도적입니다. 마치 서울의 마포, 서대문, 종로의 인구 대비 서점수처럼 말이죠.

 사람 사는 곳은 어디다 비슷해서 미국이라고, 또 뉴욕이라고 다르진 않은 모양입니다. 미국에서도 동네책방 운영은 겁나게 어렵고, 생존을 모색하기 위해 별의별 수를 다 써야 합니다. 당연히 커피도 팔지요.     

 구글링을 통해 브루클린 동네책방(independent bookstore) 중에 유명한 곳을 열 군데쯤 꼽자면, 커피를 파는 3군데 서점과 식재료를 파는 한 군데가 꼽히더군요. 심지어 가장 유명한 곳의 이름은 ‘Cafe con Libros’였습니다. 이탈리아어를 영어로 바꾸면, ‘coffee with books’입니다. 아키스트라우스서점(Archestratus Books + Foods), 멀래시즈서점(Molasses Books)나 이 책에서 마지막으로 다루는 벌리커피앤드베터리드댄대드서점(Burly coffee & Better Read than Dead Books)은 커피도 유명하더군요. 

 사정이 이럴진대, 200군데의 서점을 더 찾아보면 커피를 팔고 있는 서점들은 훨씬 더 많이 나오겠지요.     


 이 책에서 두 번째로 다루는 파워하우스서점(PowerHouse Books)은 지역의 중대형서점으로 3군데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브루클린 덤보지역에서 파워하우스아레나(Powerhouse Arena)를 그리고 브루클린 8번가에서 파워하우스온에잇스(PowerHOuse on 8th) 운영하는데요, 덤보에서는 커피를 팔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섯 번째로 다루고 있는 맥널리잭슨서점(McNally Jackson Books) 역시 맨해튼에 3개 지점, 브루클린에 2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장 사정에 따라 커피를 파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습니다.

 매장의 덩치가 제법 있는 그린라이트서점(Greenlight Bookstore)은 주변 상점들과 협업을 통해 커피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가 본 적도 없는 뉴욕의 사정을 제가 잘 알 수는 없습니다만, 구글링을 통해서만으로도 이 정도의 사정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책을 읽기도 전에 말입니다. 물론 선행 학습도 한 몫했겠지요.

 가본 적도 없는 동네의 책방을 이야기하는데, 그 동네에 대한 파악 정도는 해봐야 왜 그 서점들을 골랐는지, 또 왜 그 서점들을 주목해 봐야 할지를 고민해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책을 읽기 전에 구글링을 통해 예습을 하는 좋은 독서습관은 이 책을 통해서 만들었나 봅니다.


 그래서일까요,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은 단락을 접하고는 골이 띵해졌습니다.     

 그렇다면 브루클린 동네책방은 커피를 팔지 않고도 어떻게 10년, 30년, 심지어 50면 넘는 세월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냈을까? 책 판매에만 힘 쏟는 브루클린 책방과 한국 책방은 어떻게 다를까? 우리에겐 없는 그들만의 전략은 무엇일까? 그러니까! 왜? 커피를 팔지 않는 걸까? 책방 주인과의 만남, 인터뷰는 바로 이 의문에서 시작됐다.     

 이 절망적인 기술을 읽는 순간, 이 책에선 더 이상 자영업으로서의 서점업에 대한 ‘업의 본질’에서 탐색하는 고민은 기대할 수조차 없겠고, 제대로 된 인터뷰도 기대할 수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작가 자신도 “몇 번의 방문과 인터뷰로 사정을 전부 알 순 없기에, 내가 전하는 이야기에 담긴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기껏해야 글 좀 쓰는 아줌마의 재미없고 내용 없는 미셀러니를 읽게 되겠구나 예감했습니다. 물론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기 마련입니다.    

 

 30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미국에서는 반스앤드노블이 독립서점들을 상대로 강권을 휘두르던 시기였습니다. 영화 <유브 갓 메일>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이 거대 서점체인의 왕국은 숱한 독립서점들을 무너뜨렸는데요, 이 메기 덕분에 우량한 독립서점들은 되레 반사이익을 얻게 됐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경쟁력 없는 떨거지들을 치워준 덕분에 더 빛날 수 있는 알짜배기로 눈에 띌 수 있었다는 거죠. 시차가 조금 있었을지언정, 일본이나 우리나라도 같은 트랙을 탔습니다. 대형서점은 이종교배를 시작하며 점점 대형화됐고, 소비자들도 단순히 책을 구매하러 서점을 가는 게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위해 대형서점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출판유통구조만 변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책방을 찾는 소비자들의 인식도 변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때 일본의 대형서점들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었고, 10년 전쯤부터는 그 변화를 직접 만들어냈던 호리베 아쓰시가 세이코샤로 쓰지야마 요시오가 타이틀로 그 맥을 잇고 있습니다.

 20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시절이 수상해집니다. 아마존이 등장한 지 10년이 된 해입니다. 이 놀라운 이커머스 공룡은 출판유통의 왕자 자리를 반스앤드노블로부터 완전히 빼앗아 옵니다. 반스앤드노블이 치던 장난질을 이 공룡이 이어받아, 지금은 유통업계 장난질의 바이블로 우뚝 섰죠. 다시 또 이 메기에 의해 서점업계의 재편이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살아남은 곳들은 강해졌습니다. 대체불가능한 아날로그로 자리매김하게 된 겁니다. 몇몇은 이커머스에서 살 길을 찾았고, 다른 몇몇은 커뮤니티에서 방향을 모색했고, 몇몇은 아날로그 럭셔리에 안착했습니다. 그 손에 꼽히는 곳들이 줄곧 ‘Best 10 Bookstore in Brooklyn’에 선정되는 것이겠죠.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2006년작 《짝패》의 명대사. 적응을 하니까 오래가는 거라는 당연한 말이다.



2. 누구나 꼽는 무난한 목록


 11곳의 서점 중에서 첫 번째 테라스북스(Terrace Books)와 열 번째 블랙스프링북스(Black Spring Books)를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 9군데는 브루클린을 대표하는 20개의 서점에 들어가고도 남을 듯합니다.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커피를 파는 서점 댓 군데와 큄비서점(Quimby’s Bookstore NYC), 워드서점(Word Bookstore),  언네이머블서점(Unnameable Books), 데저트아일랜드(Desert Island) 같은 곳을 포함하면 베스트 20이 완성됩니다. 중대형 서점을 제외하고 작은 동네책방만을 따지면 이 책의 목록에서 댓 개, 빠진 곳 중에서 댓 개 정도가 들어가 베스트 10이 완성되겠습니다.

 

 나쁘지 않은 목록입니다. 잘 알려진 곳을 두루 빼먹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문제입니다. 이 책의 제목이 "브루클린에서 가장 유명한 동네책방 베스트 10'이었다면 탁월한 선택이었겠지만, '책만 팔아도 먹고사는 브루클린 서점들의 생존전략'을 논하기엔 너무 엉터리란 겁니다. 

 심지어 책만 팔아도 먹고 살 수 없어서 딴짓을 하는 서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이 내용을 배신해서, 독자들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목록을 만드는 것으로 제 할 일의 절반 이상을 해내는 책들이 있습니다. 이런 류의 취재기(를 빙자한 수필이라 부르기도 힘든 이상한 글)가 되겠지요. 잘 만들어진 목록은 거기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글감들이 스스로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이 목록의 구성에서는 맥락이란 걸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차례 다음 페이지에 지도 가 없었다면, 아주 단순하게도 '위치'에 기반했구나도 눈치채지 못했을 겁니다.



3.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대상 선정에서부터 이렇다 할 기준이 없는 건 그냥 넘어가겠습니다만, 글이라도 재밌게 써야 읽는 맛이라도 있습니다. 지루한 개인사의 나열은 주제인 책방 이야기와 맞닿지도 않고, 쓸데없는 책 이야기들은 빙빙 겉돌기만 합니다. 뭐랄까요, 원고지 장수를 채우려는 쓸데없는 노력으로 보였습니다. 언젠가 미국 작가들의 책을 씹으면서 똑같은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습니다. "길게 쓴다고 원고 매수로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닐 텐데, 도대체 쓸데없는 말들로 장수를 늘이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라고 말입니다. 

 제일 힘들었던 건 책방 운영이란 비즈니스에 대한 나이브함이었습니다. 저의 나이브함을 해결해 보려고 펼쳐든 책에서, 저보다 더 나이브한 생각을 접하게 되니 참기가 힘들더군요. 


 그나마 주목해 볼 만한 내용을 최대한 발라내 보았습니다. 

 테라스북스라는 커뮤니티북스토어의 실패 아닌 실패나 스푼빌앤드슈거타운북스의 명확한 실패는 생각해 볼 게 제법 됩니다.

 파워하우스북스, 그린라이트북스토어, 맥널리잭슨과 같이 강소지역서점의 강점은 다른 문헌을 통해서라도 공부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테라스 북스는 저에게 일종의 사이드 프로젝트였어요. 그래서 중고 서적, 희귀 서적도 취급 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봤지만 이아가 생긴 이후 시간의 부족으로 본점인 커뮤니티 북스토어와 모습이 비슷해지고 말았죠. - 1장 테라스 북스. 20쪽
 ‘Less is more’ 전략을 취했어요. 반스 앤 노블보다 그리고 파워하우스 아레나보다 재고가 적을 수밖에 없으니 큐레이션에 보다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동네 사람들 취향에 맞춰 청소년, 아동서, 생활양식이나 요리, 인테리어 등에 주력했습니다. - 2장 파워하우스 온 에잇스
 1997년 반스 앤 노블이 인근에 문을 연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수잔은 이 거대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가게 벽을 허물고 재고를 확장했으며 카페를 만들고 뒤뜰을 꾸몄다. 어렵사리 경쟁을 이어가던 수잔은 2001년 케서린 본에게 책방을 넘겼고, 2010년부터는 스테파니 발데즈, 에즈라 골드스타인 두 주인이 운영해 왔다.
 주 고객층은 책 산업에 종사하는 동네 사람들이에요. 열렬한 독자인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흥미롭고 도전적인 책으로 책방을 채우는 것이 저희의 숙제이자 기쁨이죠. - 3장 커뮤니티 북스토어
사실 제가 문구 사업으로까지 손을 뻗은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책방에 전시된 책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통해 그 책방의 취향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 5장 맥널리 잭슨
소설가, 논픽션 작가, 극작가 시인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직원들은 저희 서점의 자랑거리랍니다. 그래서 스태프가 선정한 책은 잘 팔려요. 아마존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 6장 그린라이트 북스토어
1년에 180달러를 내면 센터 포 픽션의 멤버십 회원 자격을 누릴 수 있다. 회원들은 방대한 양의 책을 마음껏 빌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2층에 위치한 널찍한 공간을 무료로 이용하고 판매하는 책을 할인받을 수도 있다. 게다가 한 달에 250달러만 내면 작가들은 조용한 작업 공간을 임대할 수 있다. - 7장 센터 포 액션
저희가 하는 행사는 다른 서점과는 조금 달라요. 그러니까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행사라기보다 저희가 좋아하는 것들을 시도하는 행사죠. 책들도 그래요. 저마다 관심 분야가 다른데 아무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들을 서점에 들여놓게 되죠. - 8장 북 서그 네이션
고객들에게 솔직히 터놓고 얘기하고 15만 달러를 목표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죠. 
관광객들 역시 도움이 되었죠. 그들이 와서 책을 사지 않았더라면 저희 책방은 진즉에 문을 다았을지도 몰라요. 책방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덕분이었죠. - 9장 스푼빌슈거타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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