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궤도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었던

정답만 찾았던 모범생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 별명은 '범생이'였다. 그 정도로 나는 모범생이었다. 규칙을 준수하고 부모님·선생님 말씀 잘 듣는 우등생. 그게 내 정체성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높은 불안도가 그런 삶을 살도록 했던 것 같다. 무엇을 골라야 그게 '정답'인지 모르겠을 때, 교과서에 나온 대로 하면 틀리진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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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Afif Ramdhasuma



이상주의자이면서도 지독한 현실주의자였던 나는(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게 불가능할 것 같지만 가능하다) 어렸을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스스로 엄청난 작가가 될 정도의 재능이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꿈은 지레 포기했었다. 그래서 나는 꿈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처럼 선생님, 외교관 같이 멋지면서 모두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을 꿈꾸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도무지 그런 직업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매년 진로희망서에 다른 직업을 써냈던 것 같다. 교사, 번역가 등등.


꿈이 없어서 고민이라는 나에게 부모님,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럼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해둬. 그러면 네가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그걸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거니까." 그래서 그렇게 했다. 공부를 열심히 했고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며 성적을 바탕으로 좋은 대학교에 진학했다. 대학교에 갈 때도 내 점수가 너무 좋아서 그 점수에 맞춰 단과대를 사회대로 선택했다. 인문대보다는 사회대를 선택하는 게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 했다. 명확한 꿈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 말을 따랐다.


대학 생활의 막바지, 취업 전선에 뛰어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4년이 넘게 대학을 다녔으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었다. 당시 대학교에서 취업 관련 상담을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어서, 신청해 상담받았던 기억이 난다. 남들은 다 '저는 이러이러한 직업을 가지고 싶은데 그러려면 어떤 스펙을 더 채우는 게 맞을까요'를 문의하러 갔을 그 상담에서 나는 '저는 하고 싶은 일이 없고, 솔직히 취업하고 싶지도 않아요. 저는 회사생활과 맞지 않는 사람일 것 같아요.'라고 징징댔다. 당시 상담 선생님은 그런 나에게 "아직 회사생활을 해보지 않고 안 맞는다고 판단하는 건 적절하지 않으니, 고민이 된다면 취업해서 3년 정도 다녀보고 그래도 안 맞는다면 나오는 것이 어떻겠냐"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또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취업 준비를 해서 좋은 공기업에 합격했고, 그 회사를 다녔다.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서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정답'을 선택했다. 열심히 공부하라고 해서 했고, 좋은 대학의 좋은 학과를 가라고 해서 갔고, 취업을 하라고 해서 했다. 그 선택들은 모두가 '좋은' 선택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어서, 내가 그 선택을 했을 때 반대에 부딪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학교에 들어가니 모두 나에게 축하하며 꽃다발을 안겨줬고, 회사에 들어가니 다들 대단하다며 나를 추켜세워줬다. 그러니 선택에 따른 스트레스는 별로 없었다. 그 선택이 맞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그 선택을 하고 나서 나는 너무 힘들었다. 점수에 맞춰 선택했던 단과대에서 나는 인생 처음으로 부적응을 경험했고, 전공이 나와 안 맞을 때 얼마나 괴로울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대학 생활 내내 나는 전공은 딱 졸업 가능할 만큼만 학점을 채워 듣고 나머지 모든 학점은 인문대 교양에 쏟아부으며 생활했다. 회사를 다녔던 13년 내내 나는 회사생활과 안 맞는다고 처절히 생각했다. 그런 것치고 회사를 꽤 오래 다닌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감히 그만둘 생각을 하지 못해서.


나는 정말 모두가 A가 맞다고 할 때 B를 선택해 본 적 없이 살아온 사람이었던 것이다. 모범생이라는 게 그렇다. 모두가 A가 맞다고 하면, 나는 B를 해보고 싶을지언정 A를 골랐다. 그러니 안정적인 공기업을 과감히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 해보겠다고 할 마음이 먹어지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막막했고, 말했을 때 걱정 어린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았다. 너 어쩌려고 그래. 대책 없이 이게 무슨 짓이야? 그런 말들에 대응할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결국 결단을 내리고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선정과 내 첫 책, <사랑할수록 나의 세계는 커져간다> 출간 경험 덕분이었다. 내 글이 인정받는 경험을 하고,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진심으로 하고 싶은지 절실히 알게 된 후에야 나는 다른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선택을 그만하고 내가 진짜 원하는 선택을 해보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잘나가는 인생'과 정말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하지만 어쩐지 사람들의 인정을 한껏 받던 직장에 다닐 때보다 마음이 더 편하다. 이제 나는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그걸 행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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