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아프고 싶었다,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알면서도
회사 가는 길에 '아, 교통사고 나서 조금만 다쳐서 회사 안 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다면 우울증이니 병원에 가보라는 이야기는 이제 꽤 유명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물론 정신건강이 좋다고 말할 수 없는 나도 이런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하지만 퇴사를 본격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지난 몇 년간 내가 했던 생각은 아주 약간 달랐다. 좀 더 소극적이지만 적극적으로 건강에 집착했달까.
원래 나는 건강검진을 미루고 미루다 12월이 되어서야 헐레벌떡 받는 타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건강검진은 나에게 정말 하기 싫은 무엇이었다. 아픈 것에 예민한 내가 이런저런 고통(특히 유방촬영은 심한 고통을 수반한다)을 견뎌야 했던 것도 문제였고, 뚱뚱하다는 이유로 수면내시경을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매번 덜덜 떨며 검사실로 들어가야 했던 것도 검진을 싫어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니 이렇게 힘든 건강검진을 미리미리 받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회사에서 '건강검진 신청 안 하신 분들은 빨리 하세요'라는 공지가 뜰 때 그제야 신청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그랬던 내가 퇴사를 고민하던 지난 몇 년은 건강검진을 공지가 뜨자마자 그 누구보다 빠르게 신청해 여름이 오기도 전에 받았다. 이유는 뻔했다. 지금 검진받으면 뭐라도 병명이 나와서 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분명 너무 힘들고 몸이 무겁고 어딘가 잘못된 것 같은데, 검진을 받으면 문제가 명확히 밝혀져 당당하게(?) 쉴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었다. 지금은 안다. 이게 얼마나 위험하고 바보 같은 생각인지. 아프고 싶어서 건강검진을 잽싸게 받다니! 당장 수술이나 조치가 필요한 결과가 아님에 감사해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나쁜 생각을 하다니. 근데 그때는 그랬다. 교통사고가 나서 경미한 부상을 입어 출근을 안 해도 되는 상황에 처하고 싶은 사람의 마음으로 건강검진에 임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건강검진 결과 이것저것 문제는 많았지만 당장 쉬어야 하는 치명적인 문제는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나는 안도하면서도 좌절했다. 그럼 나 계속 회사 다녀야 돼? 이렇게 매일매일 힘들게?의 마음이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건강을 관리해 보자(쉴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그간 사실상 방치했던 각종 지병을 꼼꼼히 챙기기 시작했던 것도 이즈음이었다. 그 역시 병원으로부터 '이 정도면 꽤 심하니 회사에 나가지 말고 쉬어라'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 웃기게도 각종 병원의 소견은 모두 같았다. '너 지금 아픈 거 맞긴 한데, 이건 안정을 취할 게 아니라 활동을 해서 살을 빼야 하는 상황이야. 회사 계속 다녀.'
결국 수년간의 건강 투쟁(?) 결과, 나는 주기적으로 피 같은 휴가를 쓰고 각종 병원에 방문에 약을 타야 하는, 그렇지만 회사를 쉴 수는 없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런 결과를 받아들였을 때 나는 좀 많이 지쳤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때 가장 건강하지 않았던 건 내 멘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차라리 아프고 싶다고 생각했던 걸 보면 꽤 심각했던 것일지도. 어쨌든 끝내 회사를 쉴 만큼의 아픔까지는 가지 못한 나는 퇴사를 선택했다. 그 이유 중에는 건강 회복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끊임없이 반쯤은 일부러 내 건강을 망치고 있었던 것 같다. 회사에 다니고 있는 스스로를 벌주는 기분으로 말이다. 퇴사를 감행한 이후인 지금은 그저 건강하고 싶다. 일주일에 두 번 꼬박꼬박 필라테스를 나가고, 스트레칭도 꾸준히 하려 노력하고 있다. 식단 관리는 여전히 어렵지만 어쨌든 좋은 음식을 챙겨 먹으려 한다. 이제 나는 잘 살아야 하니까. 비로소 건강관리에 대한 제대로 된 마음가짐을 얻어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