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교도소에 근무하다 보면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것인지 심히 헷갈릴 때가 많다.
분명히 나에게 거짓말을 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신이 아닌 이상
수용자 한 사람 한 사람씩 귀 기울여 듣다 보면
말이 심히 그럴싸하여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고 나서 한참 있다가 뒤늦게 내가 속았구나 하는 것을
알아챌 때면 나는 그들의 간사한 혀에 또 넘어간 나를 자책하곤 한다.
하루는 어떤 수용자와 면담을 하게 되었다.
자신은 금융업을 하던 사람인데 밖에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을 하다가
일이 잘못 꼬여 이곳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부장님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제가 여기에 왜 구속되어 있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국가에 세금도 몇 십억 이상 냈고, 어려운 사람도 많이 도왔습니다. 표창을 받으면 받았지 여기에 들어올 사람은 절대 아니거든요. 저 정말 나쁜 사람 아닙니다."
아직 재판 중인 미결신분인 수용자였고 아직 형이 선고되지 않았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의 표정, 말투를 보니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겠다 싶기도 했다.
궁금증이 발동한 나는 그의 신분카드를 검색해 본다.
그의 사건내용을 읽어보고 난 후 나는 피해자에 빙의되어 그의 파렴치함에 손이 벌벌 떨렸다.
거액의 대출을 해준다 속이고 피해자의 피 같은 돈을 받고 잠적한 사기꾼이었던 것이다.
현재 이 사건 외에도 여러 사건으로 사기를 친 경력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인간으로서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거나 정말로 자기가 저지른 것이 범죄인지 모르는 듯하였다.
어떻게 이런 사람 입에서 억울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그 수용자는 세상 억울한 척하더니 법원의 징역형 선고를 받았다.
또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떤 수용자와 대화를 하다가 의도치 않게 그의 과거를 알게 되었다.
"부장님! 저 서울대에서 컴퓨터 공학 전공했습니다"
"아 그래요? 전혀 몰랐네. 그렇게 안 보였는데..."
그는 정말 서울대 캠퍼스 구석구석을 나에게 설명해 주며 내가 물어보지도 않은 디테일에 대해 설명했다.
나도 이 정도까지 아는 것이면 정말 서울대를 나왔겠거니 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의 신분카드를 검색해 본 결과 그는 전과가 몇 건 있었고,
서울대와는 거리가 먼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내가 정말 그의 과거를 모를꺼라 생각했을까?
뻔뻔하게 이곳에 들어와서도 사기를 치는 수용자들은 아주 많다.
사기꾼이 사기꾼에게 당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인 것이다.
나도 정신을 안 차리면 그들의 거짓말에 어떻게 놀아날지 모른다.
맘만 먹으면 그들은 간사한 혀로 나를 이리 움직였다 저리 움직였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항상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이 일을 하고 난 후부터 사람의 말을 잘 믿지 못하는 병이 생겼다.
물론 수용자를 상대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그들의 말은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것이 맞지만
담장 밖의 사람들의 말까지 믿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경계하고 있다.
나아가 그것이 인간에 대한 혐오로까지 번지면 더더욱 안될 것이다.
'서로를 못 믿는 병'은
수용자들 사이에서도 흔하다.
수용자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왔지만
자신만은 깨끗하고 남들과는 '격이 다른' 수용자인 척을 한다.
특히 완장을 주면 그 경향이 더욱 심하다.
교도소 내에서 일을 하는 것을 '출역한다'라고 하는데
교도소 내의 여러 가지 일 중에서도 핵심적이고 누구나 원하는 곳으로 출역하는 수용자들은 나름의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예를 들면 교도소 내의 여러 시설들을 유지보수하는 시설보수,
교도소 내에서 수용자들의 이발을 책임지는 수용자이발,
교도소 내의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구내청소,
직원의 손과 발이 되어 사동 업무를 도와주는 사동봉사원 등
이들은 나름 선택되어 교도소 내의 업무가 원활하게 잘 돌아가도록 일을 하는 대신
나름 가석방 혜택을 받을 때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어느 하루는 내가 수용자와 한바탕 언쟁을 벌인 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본 한 사동 봉사원이 위로를 해준답시고 나에게 말했다.
"부장님 쟤네들은 인간 말종입니다. 쟤네들 같은 갱생이 안 되는 쓰레기들 때문에 너무 맘 상해하지 마세요."
그 사동 봉사원은 어느 때보다도 강하고 격앙된 어조로 오히려 나보다 더 그들을 증오했다.
나는 당황스러웠고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그 사동 봉사원도 범죄를 저지르고 들어왔지만
그 또한 범죄자를 혐오하며 불신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했다. 뭔가 나는 그들끼리는 동병상련의 감정으로 서로 감싸주고 이해해 줄 줄 알았는데
그들을 부정해야 자신이 상대적으로 떳떳하고 선량한 사람이 된 감정을 느끼는 듯했다.
결론은 범죄자도 범죄자를 못믿는다.
누구의 말도 쉽게 믿어서는 안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과연 죄를 뉘우치는 사람은 있을까?
인간은 선하게 태어날까? 악하게 태어날까?
이곳에서 근무하다 보면 점점 성악설을 믿게 될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그 정글 같은 세계에서 교도관으로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오늘도 이 철칙을 맘에 깊이 새기며 근무에 임한다.
'그 누구도 믿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