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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호수 Jun 08. 2024

제복에는 문제가 없다

사람들은 으레 처음 만났을 때 무슨 일을 하는지 먼저 묻는다.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파악을 하는 동시에 그 사람의 사회적 계급을 묻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질문은 상황이나 나이에 따라

"너 어디 대학교에 다니니?"

"어느 동네, 어느 아파트에 살아?"

"아버지는 무슨 일 하시니?" 등과 같은 질문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물론 순수하게 그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서 직업을 묻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 질문을 통해서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유추할 수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직업이나 사는 곳 등 그 사람의 내면보다는 조건을 통해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을 좋아하니 말이다.  


나는 무슨 일을 하는지 묻는 질문이 언젠가부터 싫어졌다. 내가 교도관이라고 하면 나오는 반응들이 썩 유쾌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사람들은 내가 교도관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얘기했을 때부터 부정적인 말들로 나를 괴롭히곤 했다.


"너 안 어울린다."

"다른 직업 생각해 보는 건 어때?"

"야 네가 교도관 하기에는 너무 아쉬운데"

"그 일 네가 제대로 할 수 있겠어? 힘들 것 같은데..."

"왜 하필 교도관이야? 다른 것도 많은데"


그 사람들 중엔 우리 아버지도 포함되었다. 물론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진지하게 이 직업에 대해 고민하고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밤낮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를 위한답시고 하는 말들은 한 없이 가벼웠다.


내로라하는 곳에 취업하여 한참 어깨가 올라간 대학 친구 녀석이 우쭐대며 내게 한 방 먹인 적도 있다.

"야! 나 같으면 그거 시켜줘도 안 한다."

그 당시엔 아무 타격이 없었지만 곱씹을수록 그 말이 화가 났다. 내가 선택한 직업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에 대한 존중이 없다고 느껴졌다. 그 친구는 한 마디 말로 내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의 무게가 이렇게도 무거울 수도 있구나 느꼈다.


나는 나의 직업에 관하여 사람들이 말하는 것들이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진작에 알았고, 스스로 위축되어 나 자신이 교도관이라는 사실조차 말하기 꺼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도 안다.

내가 이러한 말들에 휘둘린다는 건 내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내게 무례한 말을 해 준 친구에게 오히려 한 마디 되받아칠 수 있는 강한 멘탈과 자부심을 가졌다면, 상처받기는커녕 오히려 나의 기세와 당당함으로 그 친구가 말실수를 한 것을 부끄럽게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자신이 온전한 교도관으로서 준비가 덜 되어있기 때문에 남의 말에 휘둘리고 내가 교도관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조차 부끄러웠던 것이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내가 직업을 준비하려고 했을 때의 초심은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하는 사명감이었다. 교도관이라는 직업은 남들에게 내세울 것도 없지만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떳떳고 소중한 직업이다.


오랜만에 지금 나는 제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서 보았다.

거울 앞에는 비록 완벽하진 않지만 제법 괜찮은 교도관이 한 명이 서 있다. 오늘따라 제복이 유난히 멋져 보인다. 그 제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괜찮다면 그 제복은 더 빛나보일 것이다.


제복에는 문제가 없다.

그것을 입고 있는 사람이 문제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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