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인정하면 되는 것
"자신의 그림자를 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깊고 넓은 사람이 된다" (칼 융)
자기 안의 그림자를 의식 속으로 불러내어 인정하면 더 이상 무의식 속에서 파괴적인 힘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림자는 제거해야 할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일부로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림자가 무의식 속에 있을 때는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그 그림자의 영향을 드러냈을 것이고 의식적으로는 그 그림자 반대의 가면을 쓰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 바로 그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의식 속 그림자를 의식 속으로 들여와 그냥 그대로 인정하면 더 이상 무의식 속에서 더 강력하게 눌린 상태로 있지 않을 테니 그 영향력을 발휘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어떤 그림자가 삶 속에서 떠오르거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혹은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라는 식의 이중화살은 멈추는 것이 좋다. 물론 그 그림자를 외부에 투영하여 밖을 손가락질하는 것은 더욱 돌이키기 어려운 일이 된다.
"그 무엇이 오든지 감사하라.
각각의 손님은 안내자로서
저 위로부터 보내졌을 테니"
(루미의 여인숙 중에서)
루미의 시 구절처럼 원치 않았던 슬픔, 우울함, 절망, 그것이 빛이 아니라 그림자로 느껴지는 모든 어두움까지도 그대로 의식 속에서 인정해 주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자유롭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불교의 대승기신론에서는 "무명은 깨달음의 근거이고 깨달음은 무명의 소멸이다"로 무명 즉 무의식 속 그림자를 빛으로 안내하는 근거로, 깨달은 뒤에는 빛으로 안내한 뒤 소멸되는 안내자로 표현하고 있다.
나는 한 때 내 안에 불편한 걸림들을 얼른 제거해 버리고 소멸해 버리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젊은 시절 조금 오랫동안 우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우울의 시간 덕분에 우울에서 벗어나려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야 다시 느끼는 것은 그 우울은 그냥 그 우울 그대로 존재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이고 나는 다만 그 우울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면서 내 일부로 받아들이면 그뿐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마음이 어둡기로 치면 깜깜한 절벽 보다도 더 깊어 보이지만 바꾸기로 마음먹으면 종이 한 장 차이, 아니 코 만지기보다 더 쉬운 것이다.
그러나 어둡다고 그 어둠을 퍼내고 제거하려고 온 에너지를 쓰면서 그나마 있던 빛마저 힘을 못쓰게 된다.
어느 정신병자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둠을 퍼내기 위해 밤이 되면 소쿠리로 밤새도록 어둠을 퍼냈다. 이 세상을 위해 내 온 생을 바치더라도 이 어둠을 퍼내리라. 새벽까지 다 퍼내고 나니 이제 어둠을 다 퍼냈구나 하면서 피곤에 절어 잠이 들었고 다시 밤이 되면 또다시 어둠을 퍼내려고 밤을 새웠다는 이야기는 그저 정신병자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자기 안에 있는 혹은 타인 속의 어둠을 제거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다가 지쳐 떨어지는 그들은 자신의 빛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생을 마무리하게 된다.
이미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대로 존재할 가치와 이유, 근거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것대로 존재로 인정하면서 그에 영향받지 않고 지혜와 균형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인정하고 나면 그것은 그림자로서 강하게 소리칠 이유도 없이 조용히 우리 내면에서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밝혀갈 것이다. 어둠이 없는 삶은 과연 휴식이 있는 삶일 수 있는가,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 무엇을 저항하는 것, 그것이 그에 영향받는 것이다. 그리하여 스스로의 빛조차 잃어버린 채 생의 에너지를 다 써버리게 된다.
다만 스스로의 빛을 밝혀라. 할 일은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