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일에도 셈 없는 웃음을

기쁨선을 낮추라

by 고요의 향기

"부탁하신 명찰이 준비되었으니 가져가세요"

며칠 뒤면 연구보고 발표회날인데 아무리 찾아봐도 명찰이 없다. 도와주시는 분께 명찰 하나를 부탁드렸다. 내려가서 보니 원래 명찰과 거의 똑같다. 대단한 센스다. 기분 좋게 웃으며 계단을 올라서는데 나이가 한참 아래인 동료가 올라오는 게 보인다. 같이 계단을 올라왔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기분 좋으세요?"

"아. 명찰이 없어서 난감했는데 이렇게 똑같은 명찰을 만들어주다니 정말 놀랐어요. "

삼층까지 올라와 갈림길로 들어서는데 뒤에서 동료가 하는 말이

" 그렇게 작은 일로 어떻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있어요?"

그 순간 동료의 센스가 놀랍다. '그렇게 작은 일로 어떻게 그렇게 행복해 할 수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 자체로 말이다.


"응. 작다 크다는 생각, 그런 셈이나 이해관계를 떠나 기쁨을 그 자체로 느끼면 아주 작은 것도 큰 행복이 되지요."

"그런 걸 어떻게 아셨어요?"

"나도 배운 거예요. 누군가에게."

"그럼 저도 선배님께 배우고 싶어요."


시간이 급해서 후다닥 대화를 마무리하고 돌아섰지만 그 예쁜 후배의 말이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았다.


행복은 '강도나 크기가 아니라 빈도'란 말은 행복이라는 감정 자체가 대단한 일에 크게 느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자기 내면에 있는 기쁨의 기준선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 기쁨의 기준선이 낮을수록 빈도는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성자나 현자들은 존재 자체로 기쁨을 느끼는 이들이니 조건 없는 행복과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들의 행복 빈도는 무제한이다.


게다가 기쁨이나 행복은 전염성이 있다. 누군가의 웃는 얼굴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는 것은 그 이유 덕분이리라.


기쁨의 기준선을 낮추어서 내 감정을 기쁨과 행복으로 채우는 것은 자신이 존재하는 그곳의 에너지를 긍정으로 가득 채우는 일이란 것은 우리가 곧잘 경험하는 일이다.


아이가, 남편이 혹은 아내가 표정이 굳은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을 본다면 어떻겠는가. 화난 얼굴은 물론 더할 것이다. 감정은 소리 없이 전염되어 그 공간을 점령한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일에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은 어떻게 가능하냐면 가장 먼저 그 마음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는 것이다. 이 인식이 기쁨의 나무를 심는 일이다. 꽃을 피우려면 가장 먼저 나무를 땅에 심어야 하니까.


그다음에는 일상 속에서 작은 일에 크게 웃어보는 것이다. 하늘만 봐도 하하하, 흙을 봐도 호호호, 바람이나 햇살을 쐐도 흐음~~~, 작은 선물을 받아도 해해해.


그렇게 웃다 보면 저절로 웃음이 습관이 되어 그냥 존재하는 그 자체로 빙그레 웃음이 나올지도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늘도 하루라는 선물이 내게 왔구나 하면서 저절로 미소 지으며 하루를 맞이하게 될는지도.


그러다 보면 아무 일 없는 듯한 상황에서도 저절로 빙긋이 웃음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내 감정을 책임지는 사람이 어른이며 조건없는 기쁨을 아는 이가 현자다.

본질적인 기쁨은 조건이 없이 저절로, 본래 그런 것. 우리 존재의 본성은 본래 그렇게 아무 일없이 환하게 웃고 있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을 융은 자기라고 했고 예수는 구원, 부처는 해탈이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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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