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여름 Sep 26. 2024

한 해를 살아내는 법

또 한 계절을 버틸 이유가 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이 다 지나고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높고 청명한 하늘은 천고마비의 계절을 피부로 느끼게 해 준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고 말하곤 한다. 물론 지구온난화로 인해 여름과 겨울은 유난히 길고 혹독하지만, 짧기에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봄과 가을이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봄이 되면 벚꽃을 보러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들고, 가을이 되면 빨갛고 노랗게 물든 단풍잎을 보러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이것은 사계절의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들 만의 특권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시간에도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길고 어두운 겨울을 보내고 있을 수도 있다. 오늘은 강박장애가 아닌 우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내가 처음 자살 충동을 느낀 것은 중학교 2학년이었다. 중2병이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로 과도기에 선 중학교 2학년이란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그 시절 공부를 꽤나 소홀히 하는 편이었는데, 때마다 엄마의 잔소리는 심해졌다. 나는 너를 키우기를 포기할 테니 나가 살아라던가, 왜 너를 낳았는지 모르겠다는 후회스러운 원망은 어린 시절 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다. 어쩌면 그때 들었던 -어쩌면 진심이 아니었을- 그 말들이 아직도 가슴속 한편에 응어리로 남아 힘든 계절을 지날 때마다 나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당시에 나는 실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실행하기 전 유서를 썼다. 하얀 연습장을 펴고 두 문장이나 적었을 까, 눈물이 쏟아졌다. 당시에 우리 집에는 임신한 가족이 있었다. 곧 태어날 조카와, 그제야 막 엄마가 될 우리 언니가 걱정이 되었다. 눈물을 한 바탕 쏟고 나서야 나는 실행에 옮기지 않기로 결심했다. 치기 어린 마음에 든 생각이라 하기에는 꽤나 견고하였지만, 내가 떠나고 난 뒤 남겨질 사람들에 대한 걱정으로 실제로는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것이다.


이후에도 청소년 기를 보내면서 몇 번의 충동이 더 들었다. 나는 때마다 종이를 펼쳐두고 유서를 썼다. 어느 순간 나는 유서를 쓸 때마다 한 번씩 나의 영혼은 죽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육신을 내던지는 일은 하지 않았다. 이 것이 내가 긴 겨울을 이겨 낸 방법 중 첫 번째 방법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는 또다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상실하는 경험을 했다. 아주 사소한 일부터 시작된 그 마음은 나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당시 나는 창문이 없는 고시원에 홀로 살고 있었는데, 아침이 와도 칠흑같이 어두운 그 방 안에서, 나는 내내 불을 켜지 않고 생각했다. 시간 감각이 사라진 나는 종일 침대에 누워 시간을 죽였으며, 이따금 잠이 오면 잠을 청했지만 그 시간이 낮인지 밤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때 나를 걱정하던 누군가가 나에게 종교를 가질 것을 제안했다. 물론 이제와 생각해 보면, 본인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없는 채로 다른 신이 나 집단을 믿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 지를 잘 알고 있으나, 그때의 나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오늘이 며칠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던 나는 정해진 종교 행사 날이 되면 샤워를 하고 옷을 갖춰 입고 밖을 나섰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밖에서 쬐는 햇빛은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 하던 외출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었다. 하루종일 누워 울 기력조차 없던 내가 종교 행사에 참여해 한 바탕 눈물을 쏟아내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이 세상에는 잘못된 신념을 가진 유사 종교도 많기 때문에, 이 방법이 꼭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믿음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어떠한 대상이라도 믿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이 역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인터넷을 하다가 어떤 글을 본 적이 있다. 극심한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한 친구가 붕어빵을 먹고 싶다는 말을 했다는 것. 때는 아마도 붕어빵을 팔지 않는 늦여름이었는데, 이를 놓치지 않은 작성자가 "우리 붕어빵 팔 때까지만 살아보자"라고 이야기했다는 말. 저마다 좋아하는 계절이 있고, 또 각 계절에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위 사례의 붕어빵이 될 수도 있고, 설악산의 단풍일 수도 있고, 봄날의 석촌호수 일 수도 있다. 


나는 복숭아를 좋아한다. 밤이 길어지는 겨울이 되면 나의 우울은 더욱 깊어지는데, 나는 그때 복숭아를 생각한다. 이 겨울을 버텨 내야 봄이 오고, 봄의 햇살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복숭아를 먹을 수 있다고. 물론 고작 복숭아를 담보로 나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한 계절 한 계절을 버티다 보면 어느새 한 해가 지나간다. 그리고 그 한 해가 쌓이면 어느새 우리의 불안과 우울은 차츰 사그라들고, 언젠가는 새 봄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당신에게도 분명히 기다리는 계절이 있을 것이다. 호호 불어가며 먹는 길거리 어묵이라거나,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가을 전어라던가. 그것이 아주 작고 사소한 먹거리라도 좋다. 그래도 그 계절까지만 살아내 보자. 시간은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항상 흐르고 있고, 당신이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나고 나면 어느샌가 당신이 원하는 곳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만약 삶을 더 이상 이어나가고 싶지 않다면, 무엇보다 해야 하는 일은 정신의학과에 방문하는 것이다. 당신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있는 상처받은 나를 보듬어 주고, 세상 밖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만약 밖으로 나가기 조차 힘든 무기력에 빠져있다면, 일단은 아주 작은 일부터 실행하라. 아무 데도 나가지 않아도 좋으니 샤워를 하고, 맛있지 않아도 좋으니 간단한 요리를 하자. 밥알들을 천천히 씹으면서, 다음 할 일을 계획하면 된다.


당신에게도 또 한 계절을 버텨 낼 이유가 생기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이전 08화 당신도 강박장애일 수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