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고, 음식을 먹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며 쉬고 놀면서 하루를 보내고, 잠자고... 그렇게 지난한 날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에 변화가 생겼다. 친척 언니가 쓰던 건조기를 받게 된 것이다.
빨래를 하는 날이 되면 아침부터 조금은 분주하다. 일단 일어나 밥부터 먹는다. 그리고 곧바로 세탁물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또 건조기를 돌린다.
그렇게 3시간 정도가 되는 세탁 시간이 나는 왠지 평화롭게 느껴졌다. 저만치에서 기계의 소음이 들려오지만 나는 아무 소음 없는 것보다 그게 좋았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뭔가는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빨래가 다 되길 기다라면서 나는 노트북을 켜고 사소하게나마 내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면서 지내는지 끼적여본다. 라디오를 켜고 노래를 들으면서 그냥저냥 글로 쓰면 그것만으로도 뭔가 마음이 정리된 것 같고, 마음이 힐링된다.
건조기가 생긴 것을 계기로 빨래가 더 즐거워졌는데, 내가 좋아하는 빨래의 시간은 자주 오지 않았다.
회사에 다니지 않으니 새 옷으로 매일 갈아입지 않게 되었고 자연스레 빨래통에는 속옷과 실내복만 쌓였다. 그러다 보니 과거엔 며칠에 한 번씩 하던 빨래였는데 지금은 일주일이 지나고, 빨랫감이 제법 모일 때 빨래를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하는 빨래를 즐거워했던 것이다. 또 빨래 외에는 마땅히 내가 일정하게 하는 집안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안 다니니까 집안일도 별 무리가 되지 않고 소소한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후 나는 조금씩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방바닥을 쓸고 닦고, 이불을 널고, 냉장고 정리를 하고...
그런 아주 사소한 행동들이 나를 조금씩 일으켜 세웠다. 단지 일어나서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린 일 하나가 멈춰 있던 나를 살짝 앞으로 밀어줬다. 그렇게 나만의 속도로 일상을 정돈하는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