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이들의 안전지대

네 마음이 보여서

by Pearl K

사소해 보이지만 학교생활에서 급식 시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한참 예민한 시기의 아이들에겐 더욱 그렇다. 평소에 식사를 잘하던 아이가 좋아하는 밥마저 먹지 않고 왔다면, 기분이 상하는 일이 생겼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매번 학생들이 도서관에 들어올 때마다 습관처럼 “밥은 먹었니?”, “오늘은 무슨 메뉴가 맘에 들었어?” 하면서 아이의 상태를 살피고 대화의 물꼬를 트곤 했다.


토실토실하고 튼튼한 체구에 먹는 걸 좋아하는 혁준이는 언제나 급식을 먹은 후, 만족스러운 얼굴로 도서관에 오는 아이였다. 또 혁준이는 만화책을 좋아했다. 도서관에 오면 Why 시리즈나 마법천자문, 만화로 된 학습만화 시리즈 같은 것들을 즐겨봤다. 배불리 먹고 편안한 소파에 앉아 좋아하는 만화를 읽는 모습은 그야말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그날은 뭔가가 이상했다. 혁준이가 도서관에 들어오는데 불안해 보였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처럼 밥 먹었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혁준이는 아니요! 하고 대답했다. 왜 밥을 안 먹었냐고 물어보았더니 몰라요! 외치고는 도서관 구석 사각지대로 쌩하니 들어가 버린다.


혁준이는 동글동글 귀염상에 착한 성격이라 친구들이 가끔 장난을 치긴 했다. 그래도 정도가 지나치게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저렇게 밥도 안 먹고 올 아이가 아닌데 도대체 무슨 일인지 너무 걱정스러웠다. 혁준이는 도서관 구석에서 혼자서 중얼거리며 계속 왔다 갔다 하며 씩씩대는 것 같았다.


아이가 진정되기를 기다리면서 교실에서 급식지도를 하고 계실 담임 선생님께 메시지를 남겼다. 혁준이가 밥도 안 먹고 도서관에 와 있는데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고. 혹시 교실에서 혼이 나거나 아이들과 다투었는지를 여쭤보았다. 메시지를 확인하셨는지 담임 선생님이 같은 반 아이들을 금세 내려보내셨다. 친구들이 와서 혁준이를 데리고 교실로 가서 급식을 먹게 하려고 애썼지만, 혁준이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담임 선생님까지 오셔서 혁준이를 설득해 보았지만, 오히려 아이는 도서관을 뛰쳐나가 화장실로 도망갔다. 여자 선생님이셨던지라 어쩔 줄 몰라 한참을 기다리시다가, 혁준이가 다시 도서관에 오면 알려달라고 당부를 하시고는 교실로 다른 아이들 지도를 위해 올라가셨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수업 종이 치기 10분 전쯤에 혁준이가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평소보다 조용한 도서관 안, 만화책 서가 쪽에서 손톱을 물어뜯으며 서성이고 있는 혁준이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배가 고프지 않냐고 물었더니 배고프다고 했다. 점심을 안 먹은 이유를 묻자 혁준이는 그제야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동수업을 마치고 4층에서 3층으로 내려오는데, 2명의 다른 반 아이들이 혁준이의 필통을 낚아채 갔단다.


혁준이가 다시 돌려 달라고 계속 애원하고 따라갔는데도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아이들은 필통을 열어 안에 있던 펜을 창문 밖으로 다 던져버렸고, 심지어 천으로 된 필통을 칼로 갈기갈기 찢어 바닥에 뿌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듣는 순간 너무 화가 나서 나까지 진정이 안 되었다. 누군지 아냐고 물었더니 5반 태오와 성현이라고 말한다.


간신히 마음을 가다듬고 펜은 어떻게 했냐고 물으니 1층 바깥에 가서 다 주워 왔단다. 자신이 아끼는 필통이었다고 속상해하는 혁준이를 달래주었다. 배고플 혁준이를 위해 손에 초코파이 하나를 쥐어 주고, 수업 시간에 맞춰 교실로 돌려보냈다. 혁준이를 보내고 바로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내가 들은 자초지종을 설명해 드렸다.


곧 혁준이에게 필통 테러를 저지른 태오와 성현이를 옆반 담임 선생님의 협조로 색출해 냈다. 호된 생활지도가 이루어졌다. 두 아이의 반성문을 받은 후에, 담임 선생님 두 분이 계신 자리에서 태오와 성현이가 직접 사과하도록 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고 혁준이에게도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 같았다.


같은 주 금요일에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책 속 보물찾기 행사가 있었다. 행사 준비로 사놓은 선물 중에 마침 필통이 있어, 혁준이에게 참여하도록 권유했다. 단계별로 보물 찾기의 난이도와 상품이 각각 달랐는데 그중 필통은 3단계의 상품이었다. 다행히도 혁준이가 푼 문제가 3단계였고, 아이가 좋아하는 파란색의 필통을 선물로 준비했다.


책 속 보물찾기 상품을 받으러 온 혁준이는 포장지를 뜯어보더니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진짜 예쁘다고 말하는 혁준이의 표정이 신나고 행복해 보였다. 그제야 내 마음도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날 이후로 혁준이는 매일 맛있게 다시 급식을 먹으며, 즐겁게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만화책을 읽으러 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지만 지금도 아이들이 밥을 먹었는지를 매일 물어본다. 급식을 안 먹는다면 다른 요깃거리가 있는지도 물어본다. 이러한 사소한 것들을 확인하면서 아이들의 마음 상태도 짐작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하루의 절반 가까운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이다. 그중 급식 시간은 아이들의 균형 잡힌 성장에도 매우 중요하고, 친구들과의 건강한 사귐도 일어나는 시간이다.


앞으로도 나는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에게 급식을 먹었는지, 오늘 별일은 없었는지 확인할 것이다. 사소한 질문이지만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조금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다면 좋겠다. 학교도서관에서 학생들을 만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오늘도 점심시간이 시작되면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에게 점심을 맛있게 먹었는지 먼저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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