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아버지

어제의 일기

by 교우

어제는 꿈에 아빠가 나왔다.

아빠가 등장하지는 않았다. 아빠의 존재가 확인되었을 뿐.


꿈속에서 엄마는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나는 어릴 적 주택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엄마가 주택의 치안을 불안해했기도 했고, 주택을 팔아 아빠가 벌여놓은 여러 경제활동을 정리해야 하기도 했다. 아빠가 해왔던 소소한 주택관리를 대신할 사람이 없기도 했다. 엄마는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주택을 떠나는 걸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 주택을 좋은 가격에 팔지 못했다고 아쉬워하기는 했지만.


그랬던 엄마가 꿈속에서는 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아직 이삿짐이 들어오지 않은 집에 가서 나에게 가구배치 같은 걸 설명했다. 해가 잘 드는 양지바른 집이었다.

"아빠가 오면 해도 잘 들고 공기도 좋은 곳에 살아야지. 집 괜찮지?"

나는 엄마가 왜 갑자기 집 고르는 취향이 변했나를 짚어보면서, 과연 아빠가 이곳에 와서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 꿈속에서 나의 아빠는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병원에서 기약 없는 입원 생활을 하고 계셨다.

"엄마, 아빠가 언제 퇴원하는데? 의사가 뭐 좀 얘기해 줬어?"

나는 엄마에게 되물었다.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집에 온 나에게 엄마는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아빠가 깨어날 확률은 5%도 안 된다고 의사가 그랬어."

"응." 나는 태연한 척 대답했다. 그리고 엄마가 왜 이사를 했을까를 다시 곱씹었다.

그러다 잠에서 깼다.


현실에서 나의 아빠는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나는 학교에 있다가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서 뇌출혈로 쓰러져 계신 아빠를 봤고, 다음날 아빠가 세상을 떠나시는 걸 봤다. 그리고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며칠 후부터 나는 다시 학교에 다녔다. 엄마가 주는 학비와 용돈으로 대학을 마저 다니고, 사법시험을 치렀다.


아빠는 누구에게도 작별인사도 없이, 누구에게도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세상에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이. 그리고 아빠는 아픈지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났기에, 세상을 떠나면서 병원비도 별로 쓰지 않았고 이렇다 할 간병도 받지 않았다. 그런 아빠의 죽음에 대해 아빠의 형제들은 아빠가 죽어라 돈만 벌다가 한 푼 쓰지도 못하고 갔다고 했다. 나는 그때는 그 말이 아빠의 형제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못했던 우리 엄마 듣기에 민망한 소리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엄마도 아빠가 갑자기 너무 일찍 간 게 억울하다고 했었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의 나는, 그런 아버지의 죽음이 몹시 당혹스러웠다. 그래서 몹시 어찌할 바 몰랐다. 그때 나는 많이 곱씹었다. 아빠가 오래도록 아프다 돌아가셨다면, 어땠을까. 오랜 병간호와 병원비의 부담으로 집안이 풍비박산 났을까. 그러면 아빠를 원망했을까. 그래도 그랬다면 준비된 죽음이니 덜 슬펐을까. 아빠는 어땠을까. 아빠에게 죽음을 받아들일 시간이 주어졌다면, 아빠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나의 미련과, 엄마의 미련이, 오랜만에 아빠를 내 꿈속으로 불러들였다. 나는 꿈속에서도 아빠의 얼굴을 다시 보지 못했지만, 그 집은 괜찮은 집이었던 것 같다. 아빠는 주택에 사는 걸 좋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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