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소수를 제외하곤, 사람은 자기 안에 본성으로서 신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저의 주장이 아니라 역대 성현들의 공통된 깨우침입니다. 다만 용어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이를테면, 고타마 붓다는 고대 인도의 전통 관념을 따라 불성佛性이란 말을 사용했습니다. 유대인은 사람이나 물건, 지역 등을 구별하는데, 이때 구별된 사람을 메시아 또는 그리스도라 부르며 신성을 지닌 존재로 대우했습니다. 이러한 구별은 인간이 사는 모든 사회에서 발생했고 따라서 구별된 사람 또한 그 모든 곳에 존재했습니다. 인도 지역에서는 그들을 붓다라 불렀고, 중국과 한반도에서는 직설적으로 성인이란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제가 분석신학이라 이름 붙인 신학 체계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성관념 가운데 적어도 두 가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하나.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은 유대민족의 수호신이 아니라 우주의 주재자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저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비 없는 단성생식이 아닌 남녀의 성관계로 태어나 살다가 하느님의 신성과 합일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분석신학은 유대교와 기독교 모두로부터 일정 부분 벗어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망 후 그를 기리는 공동체에서 영적 각성이 일어났습니다. 종교를 이룬 그들은 이 현상을 ‘성령 강림’이라고 부릅니다만, 강림은 정확한 표현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개인의 신성과 우주의 신성이 만나 각성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니 감응이나 감화, 감동이 더 정확하지요. 성령 감화를 겪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랬듯이 신성한 빛과 온전한 자유와 각성을 체험하게 됩니다. 작은 그리스도가 됩니다.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을 따라서 수행정진하다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 작은 붓다가 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