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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뿐인숲 Feb 29. 2020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함

오래된 게시판


우박 때문에 얼굴이 곰보가 되었다는 밤송이에게

옹달샘이 말했다.

"때로는 쏟아지는 우박을 모두 삼켜야 할 때가 있단다.

그래야 곰보가 되지 않는단다."     


십 수 년 전 블로그라는 녀석도 나오기 전 개인 홈페이지 만드는 것이 꽤 유행하던 시절 만들어두었던 게시판이 있었다. 지금과 달리 음악 저작권 개념도 희미하던 때고, 스트리밍 서비스도 없던 때라 포털사이트 카페에서도 음악링크가 자유롭던 시절이었다. 그 투박한 게시판을 통해 책과 음악 이야기를 올리며 직장생활의 안타까움을 달래곤 했다. 음악을 들으러 찾아오는 손님들도 생기고, 사람들과 자주는 아니지만 주고받는 대화가 재미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모든 것이 변하여 대기업의 서버는 폐쇄되었고, 사람도 기억도 모두 잊혀졌다. 올려두고 넣어두었던 모든 자료는 백업받아 하드디스크에 보관해두었다. 텍스트로만 남아있는 과거의 흔적들은 그렇게 몇 개의 파일 속에서만 대화를 나누곤 했다.


가끔 사는 것이 힘들고(늘 그렇지만) 한 잔 걸치고 나면 오래된 오프라인 게시판을 들여다본다. 그 안에서 정지된 희망도 말을 걸고 진행형인 절망도 숨을 쉰다. 해결된 것이 제대로 없는 탓에 들여다볼 때마다 새롭고 흠집 난 마음은 영 고쳐지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아마 내가 쌓은 것들만 있다면 이미 오래 전 지워졌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흔적에 다른 이의 웃음과 눈물이 함께 쌓인 까닭에 자주 위로를 받는 것 같다.      


“어떤 분이 또다시 포도주 빛 바다 위에서 나를 난파시키더라도

나는 가슴속에 고통을 참는 마음을 갖고 있기에 참을 것이오.

나는 이미 너울과 전쟁터에서 많은 것을 겪었고 많은 고생을 했소.

그러니 이들 고난들에 이번 고난이 추가될 테면 되라지요.”     


오뒷세우스는 자신과 같이 산다면 영원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요정 칼립소의 제안을 뿌리치며 이렇게 대답한다. 언제 끝날지 모를 여행을 통해 고난과 어려움을 겪게 되더라도 돌아감을 위해 기꺼이 받아들인 것이다.

코로나로 온 나라가 침묵에 빠졌다. 거리는 비었고 삶은 더욱 막막해졌다. 우박이든 파도든 언젠가 그치고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어서 오기를 희망하는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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