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현 May 07. 2020

'어른'

아무것도 아닌 단어 하나

스무 살이 된 나에게 어떤 이가 아직도 너는 애라고 했다.

서른이 된 나에게 어떤 이가 지금도 너는 애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여전히 애라는 소리를 듣는다.


분명 애라는 말은 성년이 되기 전, 나이가 어린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다.

그러나 내가 들은 애라는 말에 숨겨진 의미가 그것을 뜻함이 아님을 나도, 그리고 당신도 안다.

그들은 분명 나에게, 애가 아닌 어른의 모습을 원했다.

나의 어떤 모습에서 그들은 애를 보았을까?


나는 누구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런 상황이 올 때마다 차라리 내 손해를 감수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내 모습이 어른다운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자신의 앞가림을 하는 것이 어른이라고 생각했고, 묵묵히 직장 생활을 했다.

사실 나에게는 그것조차 쉽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것에 신경 쓰는 것은 사치에 가까웠다.

나는 현실을 도피하지 않고,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어른다운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먼 나라 이야기와 같았다.


그렇게 스스로 어른이라 생각하는 인생을 살았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나를 애라고 불렀다.

나는 나를 애라고 표현하는 그 말을 부정하고 싶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 생각이 틀렸는지도 고민했다.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어른이란 단어의 의미는 무엇이길래, 그들에게 나는 여전히 애일 뿐일까 라는 생각으로 한참을 고민했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나에게 누군가 책 한 권을 추천해주었다.

책의 제목을 이곳에 적지는 않으려 한다.

그 책이 형편없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베스트셀러이기도 한 그 책이 말하는 어른의 모습은 정말 훌륭했다.

누가 보아도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이었다.

책을 보고 나서 나는 내 모습을 어른이라고 주장할 수 없었다.


그 책에 따르면 나는 어른이 아니라 애가 맞았다.

다른 이에게 폐를 끼치기 않으려 노력한 내 모습은, 반대로 다른 이에게 피해를 받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애의 행동이었다.

그저 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기 급급해  사회 문제에 소홀했던 내 모습 또한 어른의 모습이 아니라 애의 모습이었다.

책에 나오는 어른으로써 갖춰야 할 모든 것들과 나는 거리가 있었다.

그 차이가 크지 않았다면 나도 어른이라고 우겨볼 수 있었겠지만, 나와 책에 나오는 어른의 차이 너무나 컸다.


나는 이제 내가 애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어른이라는 단어 속에 포함된 무수히 많은 이상적인 모습과 나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었다.


나는 지금도 애고, 마흔이 넘어서도, 쉰이 넘어서도 애일 것이다.

맞다, 나는 죽을 때까지 애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애라는 사실을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나는 죽을 때까지 한 가지는 해보려 한다.

어른이 되고자 노력하는 애.

나는 죽을 때까지 어른이 되길 노력해보려 한다.

과거 아주 어린 꼬마였던 내가 어른이 되기를 동경했듯 말이다.


나는 이제 누가 나에게 너는 여전히 애구나라고 해도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에게 나는 애가 맞다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덧붙여, 다만 어른이 되기를 노력하는 애라고 말할 것이다.

이전 05화 '희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