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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Aug 11. 2017

at the bar

해적들과 어깨동무라도 할법한..

기네스를 주문하고선 화장실로 내려가는 계단을 내려오면서 보게된 이 장면 때문에 이곳의 술맛이 제 맛보다 더 맛있고 걸쭉하게 느껴졌을 거다. 마치 의도적으로 쌓아 놓은듯한 저 화장실 문 앞의 포개진 술통 두개와 스페인을 연상시키는 붉은 칠의 문, 노란색으로 코팅된 과장된 백열등 불빛, 그리고 난파선 분위기로 나름 빈티지 풍으로 회칠된 벽, 바로 이런 분위기가 술맛을 제대로 자극했던 것인데..

바 카운터에 앉아 깨끗하고 반짝반짝 윤이 나게 관리되고 있는 생맥주 따르는 손잡이 tap handle 들을 보는 기분은 언제나 느긋하다. 생맥주는 보통 draft(draught) beer 로 부르지만 저 꼭지를 통해 따르는 것 때문에 레스토랑이나 바에서는 tap beer 혹은 beer-on-tap 이라 부른다. 다 맛있을 것 같은 저 생맥주들 중 오늘은 뭘 골라 마실까 하며 잠시 입맛을 다시며 생각하는 순간은 달콤한 것도, 게걸스러운 것도, 고통스러운것도, 외로운 것도, 안달나는 것도, 짜증나는 것도, 뭐 그렇다고 우아하거나 엄청 신나는 것도 아닌 그저 느긋한 거다.

술을 기다리는 동안은 느긋한 심정으로 이 술집은 어느 공간이 매력적인가 하며 술집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들과 구석 구석의 공간을 천천히 훓어보게 되는 것이다. 100년, 150년을 넘어 이제 200년이 다 되었거나 이미 넘어가는 블루어(Bloor) 거리다. 2017년은 캐나다 연방이 건립된지 150년이 되는 기념비적 해지만 블루어 거리는 그보다 훨씬전 부터 형성되어 있었다. 한국의 이씨 조선 후반, 대원군 시절 즈음해서 형성되어 토론토 중심부를 지나며 동서로 뻗은 이곳 블루어 거리 옆에는 토론토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High Park 가 자리한다. 그 옛날 아일랜드 이민자들에 의해 오픈 되었을것 같은 오래된 아이리쉬 주막일것이란 생각을 하니 이 또한 이곳의 술맛을 더 좋게 느끼게 했다.

주모는 내 카메라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는데,
 자꾸 카메라가 뭐냐고 물어대는 그녀에게 일갈 했다. 카메라는 별 큰 차이가 아닌 것 같고 세상을 사물을 바라보는 눈을 더 성숙하게 갖춰야 되는게 아닐까 라며 몇번을 완곡하게 이야기 했지만, 고집스런 주모는 계속 내 카메라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난 속으로 말했다. 근데 그 소프트웨어, 즉 사물에 대한 당신만의 견해를 갖추는 것은 결코 간단한것이 아니라오. 그래서 쉽고 빠른 방법으로 좋은 카메라를 먼저 지르고 보는거지..

양귀비 꽃을 모티브로 한 모조 현충일 꽃이 기부를 바라며 놓여 있었다. 치열한 전투로 수많은 군인들이 전사한 너른 들에 이듬해 엔가 아름다운 양귀비 꽃들이 지천으로 피었다고 해서 양귀비 꽃을 말하는 Poppy는 현충일이 다가오면서 거의 모든 캐나다 국민들이 가슴에 달고 다니는 꽃이 되었고 나도 퍼피를 가슴에 단다.

서서 술을 마신다는 의미의 선술집.아이리쉬 주막은 보통 의자가 없이 여럿이 담소하며 서서 마실 수 있게 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좁은 공간의 이 곳에선 그저 좀 높은 stool 몇개를 가져다 놓았다.  한 사람이 겨우 몸을 걸칠 수 있는 작은 의자가 오늘의 주인을 기다리는 모습이 정겹다.

출출한 참에 시킨 그릴에 구운 송아지 소세지.. 마침 양이 많아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걸쭉한 kidney bean, 으깬 감자 그리고 소세지 세개를 싹싹 다 먹어치웠다. 주방에서 가끔 얼굴을 내미는 중국 출신 혹은 홍콩 출신의 주방장 솜씨가 좋아 송아지 소시지 맛이 훌륭했다. 

담배를 피기위해 또 내가 오늘 원래 가려고 했던 옆집 Latinada가 문을 열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나온 patio..여기서도 이 오래된 듯한 혹은 실제로 오래되었을 수 있는 술집의 독특한 취향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유리창이 스테인드 그라스로 되어 있다는 것과, 오래 된듯한 함석판으로 만든 등이었다.그런데 이 분위기가 예전 암스텔담 시내를 산책하다 올라 타본 옛 범선의 선장실을 바깥에서 보는 느낌이었는데, 희미한 불빛과 오래되어 뿌연 스테인드 글라스, 그리고 그 속에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해적선의 분위기가 슬슬 나기 시작한거다.

 마침 고개를 들어 간판을 바라보니 역시 고풍스럽고 개방적인 폰트에 검은 천에 흰 글씨로 쓰여있었는데 Jolly Roger! 해적 깃발이 바로 떠올랐다. 낄... 그리고 그 옆엔 마차 바퀴인지 해적선의 키 인지가 또 걸려 있었고.. ㅎ

그런데 한 사내가 문을 열고 나오면서 날 보고 하는 말. 캐시(? 주모의 이름 인듯)가 네 카메라에 엄청 눈독 들이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며 빙긋 웃으며 간다. 오호 이거 완전 해적 분위기 맞네!! ㅎ 전혀 낯 모르는 사람의 그럴듯한 농담을 들으며 엉뚱한 상상을 해보니 이 또한 술맛이 또 더욱 좋아지는 효과로 이어졌는데 사실은 술이 술을 부르고 있었던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기네스 세잔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유혹을 뿌리치며 벌썩 일어서며 난 생각했다. 진짜 해적은 따로 있었던 거다.. 술, 너!  네가 해적이었잖아!  ㅎ 한국에선 두주불사하던 주량이 밤문화가 거의 없는 이곳에서 날로 건전한 일상에만 정진하다 보니 이젠 서너 잔만 마시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젠 거의 성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한두 모금 마시게 하며  아내와 함께 집에서 즐기는 술이 훨씬 맛있다. 오늘도 술이라는 해적에게서 노략질 당하지 않고 씩씩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피터.. 잘했다 피터 계속 쭈욱 정진하길! ㅋ


Stay sober gu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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