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여름 Sep 06. 2020

외모지상주의자라 불리는 내가 사랑하는 얼굴

지난봄, 어느 동네책방에서 <소설보다 봄 2020>을 한 권 샀다. 좋아하는 장류진 작가의 단편소설이 있어서. 그리고 3500원이라는 놀라운 가격 때문인지 구입하기가 더 쉬웠다.


김혜진의 <3구역, 1구역>, 장류진의 <펀펀 페스티벌>. 두 작가의 단편소설은 어쩐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호감이 가지만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은 누군가, 그 누군가의 다른 면모를 계속 발견하며 놀라는 화자가 한 명 있었고, 싫다면서도 외모를 보면 자꾸만 끌려서 스스로에게 어이없어하는 화자가 또 한 명 있었다. 삶이, 인간이, 그렇게나 모순적이라는 걸 보여준다는 점에서 어쩌면 두 소설이 비슷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책장을 덮고 나서 '모순', 그리고 '얼굴'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모순으로 점철된 인생이라는 것. 그리고 얼굴이라는 걸 대체 뭘까? 내 소유지만, 나보다 남들이 더 많이 보게 되는 얼굴이란 거.

나는 누군가에게는 '외모지상주의자'로 불렸다. 그동안 만나온 애인들이 어쩌다보니 미남인 경우가 많아서, 주변에서 부러움 섞인 놀림으로 저렇게 부르곤 했다. 친한 친구들은 나를 잘 이해하고 있었지만, 저 말만 들은 사람들은 정말로 내가 사람을 볼 때 '잘생긴 외모만 따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사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든 큰 상관은 하지 않으려 한다) 실상은 '외모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외에도 보는 게 많으니까 간단치 않은 문제였지만. 물론 외모가 1순위가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런 내 가치관들을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귀찮아져서 그 뒤로는 내가 나 자신을 "나 외모지상주의자잖아 몰랐어?" 라며 얘기하기도 했다. 그러면 오히려 "너 남자친구 외모 엄청 따지는 거 맞잖아"라는 말보다, 다같이 웃고 넘어가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얼굴에 관련된 얘기를 나누게 될 때마다, 떠올리게 되는 추억이 있다.

몇 년 전, 이직을 준비할 당시 면접을 본 곳에서 굉장히 잘생긴 남자 K를 처음 봤다. K는 면접 진행을 도와주는 그 회사 직원이었는데, 온 세상 회사원 중에 제일 잘생긴 사람을 본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난 몇 주 뒤에 그 회사에 최종 합격해 출근하게 되었다. 자리 배치를 받았는데, 면접 때 본 바로 그 잘생긴 K 옆자리가 아닌가? 자리뿐 아니라, 팀 내에서 2명씩 셀로 묶여 업무를 담당하게 되는데 K와 내가 한 셀이 되기까지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K의 외모는 누가 보기에도 근사했고 탑배우를 닮기까지 해서 대학시절부터 '연세대 정우성'으로 불렸다고 한다. (진짜로 연세대 정우성이 누군지 수소문해보아도 소용없다.  K의 보호를 위해 학교도 배우도 이름을 바꾸었다)

그동안 해오던 직무였지만 회사의 산업군이 달라져서, 경력직임에도 먼저 그 회사에 입사했던 K에게 배워야 할 업무가 많았다. 잘생겼을 뿐 아니라 굉장히 똑똑하기까지 한 친구라, 덕분에 업무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딘가 모르게 계속 K가 불편했다. 그 회사는 야근이 일상이었던 터라 밤 12시 정도까지 근무하는 건 기본인 데다 같은 팀과 셀은 함께 회의할 일도 많았는데, 이렇게 불편해서야 앞으로 더 강도 높은 업무를 함께하기가 어려운 건 아닐까, 라는 우려가 생겼다. 친구가 아니라 회사 동료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라포가 형성이 되어야 할 텐데 어쩌지. 그리고 대체 왜 이렇게나 불편한 걸까, 의문이 생겼다. 평소 친한 후배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고, 몇몇의 후배들이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언니, 혹시 그 남자에게 관심 있는 거 아냐?" 띵…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지점이었다.

충격적인 저 말을 들은 이후로 진지하게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내가 K를 이성적으로 좋아하는가,에 대해서. 딱 이틀간 고민해본 결과 내린 결론은 "아니다" 였다. 이성적 감정이 전혀 없었다.(나는 이성애자다) 그렇다면 왜 불편한가. 그 친구가 적정한 선을 딱 그어놓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별히 내게만 그런 것은 아니고 모든 이에게 동일한 애티튜드였으므로, 그 친구의 삶의 방식 같은 거였다. 그에 반해 나는 회사에서 동료로 만나더라도 업무를 함께하게 되면 친밀한 관계로 지내는 타입이었다. 너무도 양극단의 사람들이 만나게 된 것이고, 이런 관계에서는 나 같은 타입이 더 먼저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게 당연지사였다. 그 친구와의 에피소드는 많지만, tmi가 될 것 같아 이만 줄인다. 그 이후에 서로 업무적 관계로 도움도 많이 주고받았고,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는 좋은 동료가 되었다는 얘기까지만 남겨두며.

저렇게 잘생긴 친구에게는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들지 않는데(당연하게도 잘생긴 사람을 모두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니니까), 사랑하는 이의 외모적 단점은 오히려 너무 예뻐 보인다.


근사한 곳에 피어있지 않아도 꽃은 그 자체로 사랑스럽다


이를테면, 전에 만났던 B는 저녁에 술자리가 많아 겨우 한 주만에 만나도 지난번에 만났을 때보다 살이 쪄 있었다. 게다가 나랑 만나는 내내 앉아있는 모습이 편하지 않아 보였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있는 것이었다. "편하게 앉지 왜 그렇게 앉아 있어요?"라고 물어보면 "배 안 나와 보이려고 배에 힘주고 앉아 있어요. 저 며칠 만에 너무 살쪄서 하나 씨한테 중국 부자같이 보일까 봐요" 라고 대답하던 B.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그는 알까. 내 눈에는 그저 덩치가 커서 듬직하게 느껴지는 정도라 보기 좋았었다. 그런데 혼자 저런 신경까지 쓰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그렇게나 귀여울 수가 없었다.


또 다른 이 D는 어린 시절부터 (이미) 진했던 팔자주름이 콤플렉스라고 했다. 필터를 써서 사진을 찍어도 그 팔자주름만은 선연했다. 오죽하면 그 팔자주름 때문에 시인 김수영을 닮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예전 사진들에서의 모습과 현재를 비교해보면, 나이가 들며 팔자주름은 더 깊어졌고, 눈주름도 꽤나 깊어진 듯했다. 근데 나는 그게 또 그렇게 예뻤다. 웃을 때 세모 입이 되며 웃고, 몇 개의 눈주름이 또렷하게 질 때면, 진심으로 웃는 것 같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쌍꺼풀 없는 내 눈은 평소에 일자 모양이었다가(혹은 쳐졌다가) 웃으면 반달 모양으로 힘껏 휘어지는데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눈웃음'이라고 부르며. 근데 난 모두가 그렇게 비슷한 모습으로 웃는 것 같아 나의 웃는 모습에 특별함을 못 느꼈다. 그리고 나이에 비해 얼굴에 주름이 별로 없어서인지 웃는 내 모습이 조금은 유아적이라면, D는 어딘가 모르게 굉장히 어른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내가 지닌 분위기와 사뭇 달라서 더 근사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연인이란,
다른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아니 실은
단점으로 여기는 부분을 어여삐 보는,
사랑스러운 변태들이 아닐까.
이전 01화 싸우는 순간에도 다정한 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