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의 연가곡집 <미르테의 꽃> 중 첫 번째 곡 '헌정'
1840년, 슈만은 클라라와의 결혼을 앞두고 결혼 선물로 그녀에게 가곡집 미르테의 꽃(Myrthen)의 첫 번째 곡 '헌정(Widmung)'을 결혼 선물로 그녀에게 바칩니다. 이 곡은 클라라가 그의 삶에서 얼마나 특별한 존재였는지, 그리고 그가 얼마나 강렬하게 그녀를 사랑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Widmung – 헌정
Friedrich Rückert 시 / Robert Schumann 곡
Du meine Seele, du mein Herz,
당신은 나의 영혼, 나의 심장
Du meine Wonne, o du mein Schmerz,
당신은 나의 기쁨, 나의 고통
Du meine Welt, in der ich lebe,
당신은 나의 세계, 나는 그 안에서 산다네
Mein Himmel du, darin ich schwebe,
당신은 나의 하늘, 나는 그 속으로 날아간다네
O du mein Grab, in das hinab
오, 당신의 나의 무덤
Ich ewig meinen Kummer gab!
그 안에 나의 근심을 영원히 묻었다네!
Du bist die Ruh, du bist der Frieden,
당신은 나의 평온, 나의 안식,
Du bist vom Himmel mir beschieden.
당신은 하늘이 내게 내려준 선물
Dass du mich liebst, macht mich mir wert,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가치 있게 만들고
Dein Blick hat mich vor mir verklärt,
당신의 시선은 나를 아름답게 비추어 주었어.
Du hebst mich liebend über mich,
당신의 사랑은 나를 나 자신 너머로 들어 올려,
Mein guter Geist, mein bess’res Ich!
나의 선한 영혼, 보다 나은 나로!
(가곡으로 들어보기 - https://youtu.be/789uME7qjzM)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순전한 형태로만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앞선 글에서도 밝혔듯이, 로베르트 슈만은 클라라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어느 순간 통제와 억압으로 변질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결혼 초기에 클라라에게 공연을 자제해 달라고 요구했고 작곡은 남자의 일이라며 그녀의 창작 활동을 암묵적으로 제한했습니다. 심지어 연주 일정이나 곡 해석에까지 관여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클라라의 능력이 슈만보다 뛰어났기 때문에 생긴 열등감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남편은 아내보다 위에 있어야 한다’는 19세기 사회 통념이 만든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슈만은 분명 클라라의 삶을 제약했지만 그것은 악의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사랑과 불안, 시대의 구조가 복합적으로 얽힌 복잡한 감정의 결과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존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없다
이 말은 독일의 철학자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가 남긴 명언입니다. 사랑은 '사람이나 존재를 아끼고 위하여 정성과 힘을 다하는 마음'으로 정의됩니다. 저는 특히 부부의 사랑에는 하나를 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존경하는 마음'입니다. 이 둘의 사랑이 시대적 제약과 사회 구조, 그리고 슈만의 정신 질환으로 인해 클라라가 일방적으로 희생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에는 분명 사랑이 있었고,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깊은 존경이 존재했습니다.
슈만은 평생 정신병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우울증, 환청, 강박 사고 등으로 고통받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증상은 악화되었습니다. 1854년, 슈만은 결국 라인강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하지만 지나가던 배에 의해 구조되어 엔데니히의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점점 현실과 멀어져 갔고 결국 1856년, 2년의 고통 끝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당시 클라라는 병마와 싸우는 남편을 돌보며 혼자서 여덟 명의 자녀를 양육하고, 생계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슈만의 임종 직전, 오랜 병상 끝에 마주한 마지막 순간을 회상하며 그녀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눈빛에서 나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로베르트를 보았다.
클라라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그의 음악을 세상에 알리고 지켜내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녀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연주 활동을 이어가며 로베르트의 음악을 누구보다도 진심 어린 해석으로 전했습니다.
1853년 9월, 슈만은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의 소개로 요하네스 브람스를 만나게 됩니다. 슈만은 브람스의 음악적 재능에 깊이 감동하여 '새로운 길'이라는 제목의 음악 평론을 통해 그를 세상에 알립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반년도 되지 않아 슈만은 자살 시도를 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당시 클라라는 막내 펠릭스를 임신 중이었고 육체적·정신적으로 극도로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이 절박한 시기, 브람스는 클라라의 곁에서 물심양면으로 그녀를 도왔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과 인간적인 위로를 주는 평생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일부는 이 관계를 로맨틱한 삼각 구도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클라라의 마음속 중심에는 언제나 로베르트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죽는 날까지 자신이 로베르트의 아내이자 음악적 동지로 기억되길 원했습니다.
'헌정'은 단순한 사랑 노래가 아닙니다. 이 곡은 불완전한 인간이 사랑을 통해 타인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투영하고,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하면서도, 결국 진심을 담아 서로를 존경하려는 노력을 담은 고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클라라와 슈만의 이야기는 사랑과 억압, 시대의 벽과 개인의 자유, 광기와 헌신이라는 서로 충돌하는 요소들이 어떻게 하나의 인생과 음악으로 얽히는지를 보여줍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를 존중하고 자유롭게 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불안과 욕망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덮어씌우고 있는 건 아닌가?
슈만의 '헌정'이 가진 아름다움은 바로 이런 복잡함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로베르트는 불완전했지만 진심이었고, 클라라는 상처받았지만 끝까지 그를 품었습니다. 그들이 남긴 음악은 지금도 우리에게 사랑과 인간의 깊이를 되묻는 가장 아름다운 질문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