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대지 - 생텍쥐페리
가끔 친구들 메신저 프로필을 쭉 흩어본다. 뭐든 들키는 걸 겁내는 성격인 친구는 여전히 사진이 없다. 꽃만 주야장천 올리는 친구, 아이에 관련된 뭐든 올리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산, 바다의 찰나를 좋아하는 친구도 있다. 활자 중독인 나는 늘 글을 대문으로 삼는다. 중년 프로필 공통점은 본인 사진은 잘 올리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찍어 올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사진을 자주 바꾸지 않는다. 프로필 자체가 귀찮은데 뭐 하러 쪽으로 마음들이 많이 기운다.
나이가 들면서 관심도 없던 꽃을 자주 찍는다. 때로 등산을 즐긴다. 젊었을 때는 내려올 산을 굳이 왜? 였는데 이상하기도 하다. 어떤 중년은 낚시를 하고 잡았던 물고기를 풀어주는 것을 취미로 하기도 한다. '나는 자연인이다.'는 중장년 남자들이 가장 애정하는 예능이다. 방방곡곡 자연인들이 그렇게나 많더라.
사람과 무난하게 지내며 생활을 한다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 거기다 상처를 받을 때도 많아서 소진이 된다. 가족 얼굴을 대면하는 것도 벅찰 때가 종종 있다.
인간관계는 보이는 대상에 의해 끝없이 자극이 생긴다. 상사의 얼굴을 편한지를 살펴야 하루가 넘겨진다. 아이가 방문 닫힘 소리 크기에 따라 마음이 요동친다. 늙은 부모와 통화해야 할 때 통화 버튼을 누르며 이미 한숨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미래를 예견하는 지식인들의 표정은 종종 마음을 나락으로 데려간다. 거기다 주변인들이 아프다는 소식들에 종잡을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되기도 해 잠을 설치곤 한다.
세월이 크게 다가올수록 '고요함'을 곁에 두기로 한다.
특히 점점 자연이 좋아진다. 자연은 자극도 상처도 주지 않는다. 자연 속에서 고요하게 머문다. 사람은 상대방을 통해 때로는 물질을 통과한 감정을 만난다. 감정은 상상으로 혹은 혼자서 휘몰아치지 않는다. 대상이 자극을 주어야 요동친다. 나무는 나를 나무라지 않는다. 물고기는 내 외모를 보고 놀라 도망가지 않는다.
생텍쥐페리의 자전적 소설 [인간의 대지]를 읽을 때 고요함을 만났다. 마치 내가 주인공과 비행을 하며 사하라 사막 고독과 하나 되는 경험을 한다. 내 직장 상사는 좋지 않은 마음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타인을 욕하고 깎아내리며 행복해한다. 나이를 말아 드셨음이 분명하고 듣고 있으면 불안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러니 모든 직장인이 자연인이 되고 싶을 것이다. 조급함보다는 장엄함을 느껴야 편안할 텐데 삶은 특히 돈을 버는 삶은 쪼글쪼글 작아진다.
[인간의 대지]를 읽는 동안 대지 즉 자연에 맡겨진 느낌이 든다. 하늘, 비행, 고립을 통해 설렘과 신비로움, 경이로움 가운데로 들어간다. 우리가 언제 지구를 바닷속을 물밑을 낡아가는 삶을 광활하고도 고요하게 보았나 싶은 감탄이 뭉클하게 샘물처럼 솟아난다. 저질스러운 마음이 녹아내린다. 오랜만에 치유를 위한 오랜 위로를 받았다. 나는 책에게 종종 이런 선물을 받는다. 자연도 마찬가지로 비밀스럽게 위로한다. 중년이 자연을 꼭 즐겨야 하는 이유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 대신 '고요한 어떤 것'을 두어야 천천히 늙어갈 수 있다. 나이를 즐기기 위해 고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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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통해 우리는 고요한 방목장, 이국적인 열대농장, 추수와 교감하며, 그리하여 대지 전체와 교감하는 것이다. 저 수많은 별들 가운데 새벽녘의 식사를 위해 그 향기로운 잔을 우리 손이 닿는 곳에 놓아주는 별은 단 하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