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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Nov 06. 2015

투사 1. 그림자 문제의 해결과 건강한 투사로의 전환

타인과 외부에 대한 부정적 투사를 해결하는 방법(1)

사람들이 당신을 거부한다고 느끼는가?

실은 당신이 그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최책감을 느끼게 만든다고 느끼는가?

실은 당신이 그 요구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당신을 보고 있다고 느끼는가?

실은 당신이 과도하게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것이다.

 

사람들이 당신을 해치려 한다 느끼는가?

실은 당신이 그들에게 화가 나 있고 적개심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뭔가 할 수 없다고 느끼는가?

실은 하기 싫은 것이다.

 

사람들의 '무엇' 때문에 그들을 경멸하는가?

실은 당신 속의 '무엇'이 싫은 것이다.

 

누구를 부러워 하는가?

실은 당신이 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주1)

 



위에서 말한 내용들은 모두 심리적 방어기제 중의 '투사(Projection)' 현상과 연관된 것들입니다. 각 문구의 앞 부분이 외부 대상들에 대한 투사들이고 뒷 부분은 그 투사의 본래 모습인 내 안의 '그림자'들입니다.


(#주의: 외부와 그 대상들에게 내가 투사한 그 요소들이 항상 없다는 것이 아님.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음. 그리고 그 요소들이 강할 수도 있고 약할 수도 있음. 투사 현상을 이해하겠다는 것은, 이 모든 가능성을 다 고려하는 중에 그 외부 대상들과 상관 없이 내 안에 있는 심리 구조와 원인들에 주제를 집중하겠다는 뜻임)


'투사'에 대한 일반적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신에게 내재해 있으나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을 다른 사람의 특성으로 돌려 버리는 수단. 즉, 자신의 심리적 속성이 타인에게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즉 주로 자신의 내면에 있는 받아들일 수 없거나 충격적이거나 당황스러운 생각, 기분, 충동 등을 타인의 것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화가 나 있는 것은 의식하지 못하고 상대방이 화를 냈다고 생각하는 것도 하나의 예입니다.(다시 말씀 드리지만, 상대방의 실제 상태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입니다. 그 판단은 최대한 객관적이고 종합적으로 해야 합니다. 다만 여기서는 '나의 내부에 있는 요소의 외부로의 투사'를 주제로 삼는 것입니다)


이 글은 '타인과 외부에 대한 부정적 투사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작성 된 총 3개의 글 중 첫 번째 글입니다. 두에 따라올 두 개의 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링크 1: 타인과 외부에 대한 부정적 투사를 해결하는 방법(2)

2. 밖의 대상과 그에 대한 내부의 인식은 서로 연관이 없다.


링크 2: 타인과 외부에 대한 부정적 투사를 해결하는 방법(3)

- 3. 투사의 양극성을 모두 통찰하고, 투사를 넘어선다.


'투사'에 대한 이 첫 번째 글에서는, 투사의 근본 원인인 우리 내면의 '그림자' 문제를 먼저 다루고 해결해 볼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외부로의 투사(특히 부정적 투사)는 바로 나의 이 그림자 요소에 대한 오해 때문에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로잡히는 '부정적 투사'의 기제를 파악하고 어떻게 하면 '건강한 투사'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보겠습니다.


이 두 주제만으로도 일상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부정적 투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두 개의 글 "외부 대상과 내부 인식은 아무 상관이 없다"와 "투사의 양극성을 모두 통찰하고, 투사를 넘어선다"에서는 각각 뇌과학적 이해를 통한 투사에 대한 재해석, 그리고 기존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보는 투사 현상에 대한 심층적 재해석을 볼 것입니다. 이러한 재해석을 통해 투사 현상을 좀 더 선명히 그리고 깊이 이해하면 할 수록 우리는 투사 현상을 더욱 잘 활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해는 활용을 촉진 시키기 때문입니다.


강조해 말씀 드린건데, 투사 현상은 없애거나 억제하거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이해하고 그리고 넘어서고, 활용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본적으론 긍정적, 부정적으로 나눠지지 않는 우리 의식의 자연스런 '기능'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외부 세상과 현상을 파악하는 아주 유용한 도구인 것이지요.


그리고 투사 중에서 '부정적 투사'의 경우도 꼭 멈추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멈추기만 하려는 것은 자칫 회피나 억제, 억압이 될 수도 있으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삶과 관계의 질을 위해서 점점 더 부정적 투사에서 자유로워 질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한 자유로움은 투사 현상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와 통찰을 통해 옵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해결책은 투사 현상의 정체를 밝히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해서 이제 투사가 일어나도 그 일어남 자체가 나에게 과거와 같은 부정적 영향을 잘 주지 못하게 되는 게 관건입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물리적 시간과 계속되는 의식적 통찰과 노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사 현상의 정체를 눈치챔으로써 결국은 근본적으로 해결 할 수 있게 됩니다.




1. 우리 내면의 '그림자' 문제의 해결
: 그림자가 그림자가 아님을 알아채기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일전에 썼던 아래의 매거진 글을 읽으시는 게 도움이 됩니다.


5. 대상의 악마화와 내면의 그림자의 투사

- 그것은 내면의 그림자도 악마성도 아니다.


보통 투사 현상이 부정적으로 갈 때의 주요 원인은, 내 안의 '그림자'를 내가 느끼면서 동시에 나는 아직 그것을 내 것으로 자연스럽게 품어주지도 받아 주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 존재하는 걸 인정할 수 없으며, 그래서 밖의 어떤 대상에게 그것을 덮어 씌우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이 투사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핵심은 애초에 그것이 '부정적'인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는 것입니다. 즉, 내 안의 여러 감정, 느낌, 생각, 반응 등은 마땅히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것들이지, 없애야 하거나 부정해야 할 그런 것들이 아니란 말이지요. 주로 욕망, 욕구, 두려움, 분노, 불안 등과 연관된 것들입니다.


사실 그것들은 우리 인간이 갖다 붙인 이름에 불과하지 본래 그 감정, 느낌들과는 전혀 상관 없습니다. 내가 느끼는 여러 욕구와 욕망들, 감정들은 그냥 자연스런 '생명의 반응과 외침'일 뿐입니다. 그것이 존재하고 그걸 느끼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지요. 다만 내가 어떻게 그것들에 잘 대응해 주고, 처리해 주느냐가 핵심이 뿐이겠습니다. 느끼고 바래는 그대로 무조건 다 하라는 말이 아니라, 가장 지혜롭게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 출발에서부터 그것들이 '느끼지 말아야 할, 떠올리지 말아야 할, 존재하지 말아야 할' 무엇들이라고 단정해 버리면(사실 오해된 단정인데), 그러면 이제 그 후의 모든 과정과 조처는 어긋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에 붙여진 여러 부정적인 이름들과 부정적 해석들도 그 본래의 이름이 아닙니다. 그래서 새로운 이름의 하나로 '생명의 반응과 외침'이란 말을 만들어 본 것입니다.


사실 '내 안의 그림자'들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면 투사 문제도 거의 모두 해결됩니다. 원인과 결과로 연결되어 있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내 안의 내 느낌, 욕구, 감정, 생각 등을 내가 잘 품어주고, 받아주고, 인정해 주고, 처리해 주면 더 이상 외부 대상과 타인들에게 던질 게 남아 있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혹은 기존에 하듯이 외부로 투사되어도 그게 별 상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투사된 결과 자체를 개의치 않게 되면 그러며 투사가 있든 없든 문제 될 게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투사 문제의 접근과 해결은, 외부 대상과 타인들이 아니라 '나'와 '나의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게 좋습니다. '나의 내면의 그림자' 문제의 해결이지요.


그림자들을 없애거나 고쳐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가 그림자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채기. 그래서 나 자신부터 따뜻하게 여유롭게 받아 주고, 품어 줄 수 있게 되기. 그래서 그림자로 오해된 부분들을 마침내 넘어서게 되기. 사실은, '품어 주는 게 곧 넘어서는 것'이 됩니다. 둘은 동일한 현상입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쉽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겐 그 동안 십 수년에서 수 십년 동안 쌓여 왔던 과거의 습관이 있습니다. 정신적, 의식적, 행위적 패턴들이 있습니다. 이걸 알아 채어 멈추고 그리고 바꾸고자 하는 작업이므로 어느 정도 이상의 시간과 애씀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못 할 것도, 안 될 것도 없습니다.


'시작' 하는 것이 이미 '완성'입니다. 그 중간 과정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면 말이지요. 도착점은 너무나 확실합니다.




2. '부정적 투사'의 문제, 그리고 '건강한 투사'로의 전환.


(투사를 부정적 투사와 건강한 투사로 나누는 식의 분류 기존에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절대적이거나 고유하다기보다는 하나의 유용한 상대적 방법론이 되겠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봅니다. 누가 굉장히 비겁해 보이는데 나는 그 비겁도 싫고 비겁한 그 사람도 싫습니다. 이런 경우 (그 사람이 실제 비겁한 지 아닌 지는 별도로 하고) 사실은 그러한 '비겁의 요소'가 내 안에 있고, 나는 그 요소를 인정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어 그것을 억압하거나 회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요소도 사실 내 내부의 혹은 인간의 정상적인 한 요소이고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 나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어 '그림자'로 억압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걸 '비겁함'이라고 한 것이 사실 오해라는 말입니다. 실제로는 그림자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내 안에서 나를 구성하고 있는 한 요소일 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냥 '조심성'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어떤 나름의 합리적 반응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자체를 인정하거나 허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림자로 여기며 억압, 회피, 무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냥 쿨하게 인정해 버리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그림자로 여기고 있는 상태에서 외부에 그런 요소가 보인다고 내가 느끼면 실제 그 사람이 그런 것인 지 아닌 지와는 별개로 나는 '저 사람은 비겁하다. 그리고 나는 그게 싫다'고 느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실제 그 사람은 비겁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나와 나의 내면입니다. 


또 다른 예로, 성적으로 보수적인 사람이 성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을 보면서 거부감이나 혐오감 등을 느끼는 것도 같은 기제입니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어떤 '성적 자유에 대한 추구나 욕망'에 대해서 스스로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고, 하지만 내면에는 존재하는데, 평소에 그러한 내적 긴장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느끼며 살다가 외부에 그 주제와 연관된 어떤 상황이나 사람이 있다 여겨질 때 그에게 투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움이나 분노 혹은 혐오로 그 대상을 '징벌'함으로써 자신은 자기 면죄를 받는 것입니다.(물론 투사는 어디까지나 임시 해결책일 뿐 근본적으론 실제 해결된 건 전혀 없게 되며, 차후에도 계속 반복될 뿐입니다)


이러한 투사는 '부정적 투사'와 '건강한 투사'로 나뉠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부정적 투사는 계속 알아차리고 그리고 줄여 가며, 건강한 투사를 점점 더 확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어떠한 투사이든 그 본래 정체를 알아채고 근본적으로 투사 문제 자체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부정적 투사'는, 내가 지금 투사를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모든 원인과 요소를 '바깥'에 두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투사에 매몰되고 주로 남탓을 합니다. 또한 부정적 투사는 주로 '감정적 반응'을 동반합니다. 외부의 것을 파악하고 느낄 때 어떤 감정적 반응(부정적, 긍정적 모든 감정 반응이 포함)이 크면 클수록 투사의 정도는 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감정적 반응이 부정적 투사는 아닙니다. 건강하게 정상적인 감정 반응들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냥 투사입니다. 


부정적 투사의 문제점은, 상대나 외부의 '본래의 상태와 모습, 의도' 등을 제대로 느끼고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의 요소에 의해 '왜곡된 상태, 모습, 의도'로 느끼기 때문에 결국 여러 가지 문제를 발생시키는 것입니다. 상대와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결국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감정, 생각, 행동 반응을 하게 됩니다.


'건강한 투사'는, 자신이 외부와 대상을 느끼고 파악하면서 투사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하는 것입니다. 즉, 실제 외부의 대상에서 뭔가를 보고 느끼지만, 그것이 내 내부의 것이 투사된 요소가 있는 것임을 충분히 자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느끼거나 해석하는 대상의 감정, 행동, 의도, 생각 등에 대해서 1차적으론 투사대로 해석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다른 가능성'이 있음을 늘 인식합니다. 즉 지금 내가 느끼는 그대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능동적으로 감안하는 것이지요. 투사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정적 감정 반응이 거의 없거나 비교적 덜하게 됩니다. 하지만 건강한 투사라고 해서 꼭 감정 반응이 없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투사든 감정 반응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며, 건강한 투사의 경우엔 필요 이상으로 매몰되거나 휩쓸리거나, 자신의 판단여부 등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되는 것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투사는 타인의 감정, 행위 등을 그대로 느끼거나 따라하게 되는 '거울 뉴런' 등의 작동과도 연관성이 있는 듯 합니다. 외부에 대한 학습, 공감 능력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글에서 설명할 뇌의 기본 인식 기능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넓은 의미의 의식의 투사 현상은 중립적이고 유용한 '도구'적 의미로 보아야지 병증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투사 기능 자체는 우리 뇌의 혹은 의식의 효율적인 기능일 뿐입니다. 다만 그 기능과 구조를 최대한 잘 파악하고 또 잘 사용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투사는 우리가 세상을 인지하고 파악하는 효율적이기고 유용한 기능이다. 이것을 잘 사용하면 '건강한 투사'이고 잘 못 사용하면 '부정적 투사'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목표는 투사를 최대한 본래의 기능과 목적대로 잘 사용하는 '건강한 투사'로 활용하는 것이다.



# 다음 글에서 '투사'에 대한 나머지 두 단원을 마저 올립니다. 뇌과학의 한 연구 결과를 통해  투사 현상을 다시 재해석 해 보는 글과, 기존의 투사 이론이나 해석과는 다르게 접근해 보는 관점의 글이 되겠습니다.

(주1): 이 예문들은 '무우수'에서 출간된 '무경계(켄 윌버)' 번역본 164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을 참고해 만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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