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리우의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를 읽고
류츠신의 『삼체』 3부작을 읽으면서 항상 어쩔 수 없이 읽게 되는 문구가 있었는데, 바로 ‘중국 SF 굴기’라는 용어이다. 일단 ‘굴기’라는 단어는 ‘축구굴기’, ‘반도체굴기’ 등 중국 특유의 중앙집권적 추진 방향을 일컫는 ‘한국식’ 기레기 용어일 뿐임을 밝힌다. 실제로 ‘SF굴기’라는 개념이 중국 내부에도 통용되는 용어인가 모르겠고, 또 SF굴기의 대표작 삼체는 정말로 뛰어난 작품이지만 이 말고 SF굴기에 해당되는 작품이 또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외에 영화 부분이라면 14억 내수로만 대박이 나고 해외 사람들에게는 전혀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중국식 블록버스터들이 있으니, 류츠신의 『삼체』를 영화화한 『유랑지구』는 중국 내 역대 2위의 흥행성적을 올렸으나 세계적인 흥행은 별 거 없었다.
『삼체』의 전세계적 흥행의 힘은 영어 번역에 힘입은 바 클텐데, 번역자 ‘켄 리우’ 또한 SF 작가이며 휴고상 수상자라고 한다. 아 그러면 이 작가 또한 SF굴기의 일원인가? 그렇게 말하긴 미묘하다. 『삼체』의 좋은 영어 번역이 SF굴기라는 흐름에 도움을 주었을지언정 ‘켄 리우’라는 작가는 사실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정착해 살고 있는 중국계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중앙집권적 향취가 짙게 나는 ‘SF굴기’라는 중국 SF의 흐름과는 사실 별 상관이 없다. 대만계 미국인인 ‘테드 창’보고 SF굴기의 일원이라고 하는 사람 보았는가?
그렇다고 해서 켄 리우가 테드 창 처럼 완전히 중국식 문화와 별 상관 없는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의 단편집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이하 순록떼)는 중국식 문화와 사상, 그리고 중국계 이민자들의 삶을 그리는 글들로 가득하다. 아마 이민 2세대인 테드 창과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으로, 어릴 적 간쑤 성 부근(삼국지의 서량, 그러니까 마등과 마초가 강족이라는 이민족과 어울려 살던 곳)에서 살다가 이민을 간 영향이 큰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중화사상의 영향을 한껏 받은 1세대 이민자로서의 켄 리우의 글에는, 중화사상에 대해 완전히 열린 마음으로는 바라볼 수 없는 (동아시아의 혼란한 국제관계 속에서의 대한민국 국민인) 나로서는 조금 불편한 문구가 살짝씩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플라스티네이션’이라는 아주 독특한 소재를 이용하여, 영생과 죽음에 대해 상징적으로 그린 이야기. 이때만 해도 ‘하하, 플라스티네이션이면 그 중국의 모 여배우가 당했다고 하던 그거잖아? 켄 리우는 중국이니까 혹시? 하하 농담도 참’이라고 생각했다.
‘마이크로바이옴’이라는 위장 속의 박테리아 조성비가 감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단 하나의 논문’에서 아이디어를 진행시킨 작품. 소소한 재미를 주었지만 동양의학을 옹호하는 자세에 대해서는 고민을 좀 했다. 최근에 내가 쓴 글 중에, ‘환단고기를 채용해도 소설이 재미있으면 장땡’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하려다 결국 퇴고 과정에서 삭제한 적이 있었다. 설명하기 힘들었지만 마음에 걸렸다. 테드 창(드니 빌뇌브)의 「네 인생의 이야기(어라이벌/컨택트)」라는 소설(영화)에서는 한물 간 심리학 이론인 ‘사피어-워프 가설’이 당연히 맞는 이론이라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아니, 이건 왜 내 마음속에서 거리낌이 없지? 사피어-워프 가설이 옳다는 하드SF 설정은 괜찮고 환단고기가 옳다는 대체역사물은 왜 안되는 것이지?
신비에 싸인 오리엔탈리즘 이미지로 덧씌워진 동양 의학에 대해서 냉철한 평가를 내리기 힘든 미국이나 과다 국뽕에 취해 있는 중국보다, 알 거 다 알아보고 한의학의 사이비성에 대해 논란이 심화되고 있는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이 작품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동양의학을 소재로 한 SF는 사피어-워프 가설과 환단고기 둘 중 어느 쪽에 가깝게 위치하는 것일까?
단백질 매듭을 푸는 분자생물학의 당면 과제를, 매듭 언어를 구사하는 중국의 소수민족이 풀게 한다. 소소하지만 재미있는 연결 링크가 좋았다.
지능은 알고리즘인가? 의식은 알고리즘인가? 사랑은 알고리즘인가? 하는 뻔한 문제를 다루는 작품으로, 테드 창의 「0으로 나누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짧지만 이미지화하기 쉬워서 재미있었던 작품. 이미지화하기 쉬웠던 것은 ‘인터스텔라’의 거대한 조수간만이 있는 행성을 이미 봤던 것의 영향일까? 물리학자 킵 손이 쓴 『인터스텔라의 과학』이라는 영화 인터스텔라의 배경 과학 설정을 설명하는 책이 있는데, 킵 손은 조수간만의 차가 엄청나게 큰 행성을 서술하기 위해 굉장히 무리수적인 과학 설정을 갖다 붙여야 했다고 말했다. 그런 뒷배경으로 이 작품을 바라본다면, 과학적 설정은 아마 다 틀렸을 것이다. (그래도 재미있으면 장땡인가?)
그렇게 대단한 아이디어도 아닌데 왜 3개나 썼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세 작품 다 배경과 양상이 좀 다르긴 하다. 1부는 인간이 정신을 디지털화하기 시작한 이야기, 2부는 디지털화된 인간들이 사라져 인구가 줄어든 현실세계, 3부는 실제 디지털 세계의 인류 이야기. 기본적으로 육체를 없애서 디지털화한다는 아이디어는 엄청 새롭지는 않다. 특히 3부에서 가상세계를 그리는 방식 — 클라인 병이니 차원이니 하는 이야기들 — 은 ‘조금’ 유치했다. 디지털화된 정신들은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미적 감수성 — 장엄함, 포근함, 화려함, 심플함 같은 — 을 잃고 클라인 병이나 바이어슈트라스 타원 곡선 같은 수학 법칙에 대한 미감 (즉 이과 감수성)으로 전부 전환된다는 말인가? 가장 유치뽕짝한 순간은 이름에 고래 그림이 들어갔다는 설정이었다.
원격 로봇으로 간병하는 이야기. 짧고 그만큼 와닿지는 않는다.
이민자 중국인이 거짓말을 합리화하는 이야기. 괜찮은 작품이었지만 슬프게도 나는 공감할 수 없었으며 켄 리우가 혹시 이민 전에 공산당으로부터 세뇌를 받고 미국에 왔나? 하는 좀 치사한 생각까지 했다. 심지어 이 소설은 SF도 아니었다. 우리에게 비슷한 실화로 탈북자들의 북한 수용소 이야기가 있는데, 조금의 거짓말과 과장된 부풀리기로 인해 세계의 인권단체로부터 그들이 말한 북한의 수용소의 잔인한 실태에 대해 전면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는 비판에 처해 있다고 한다.
사람 죽이고 왔다는 삼국지 관우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나름 재창작해서 그중에서 가장 재밌게 읽긴 했다만, 그래서 결론은 관우가 되살아났다는 것인가? 역시 SF가 아닌 소설이었으며 SF 단편 모음집으로 묶인 책에 마지막에 가장 분량이 긴 소설이 있으니 SF적 결말 부분을 내심 기대했으나 그렇지 않아서 아쉬웠다.
또다시 이 소설에서 심하게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으니, ‘처음에는 중국에서 생기지 않았지만, 나중에 중국 역사가 된 것은 아주 많다’는 이야기였다. 왜 여기에서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거나, 조선족이 한복 을 입었으므로 한복은 중국 문화라는 최근의 이슈가 자꾸 떠오르지? 켄 리우 미국인 아니었어?
빨리 달리면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 상대성이론의 설정을 이용한 작은 이야기.
전체적인 감상평으로, 이것보다 더 재미없는 SF 이야기들도 많으므로 이 작품집이 엄청 실망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SF의 경이감 측면보다는 인간의 감정에 집중했다는 방향으로 바라본다면 평균 이상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집이 켄 리우의 대표작도 아니었으니 일단은 이점에서는 중립적인 평가를 내려 본다. 가장 거슬렸던 것은 그 살짝 중화사상 느낌이 나는 글들로, 이 이야기들 때문에 좋은 소설이든 아니든 고깝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음을 밝힌다. 결국 나에게 ‘굴기’라는 단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가 류츠신도, 테드 창도 아닌 미국인 켄 리우가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