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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핑커의 『단어와 규칙』을 읽고

언어 = 단어 + 규칙, 마음 = 암기 + 규칙

스티븐 핑커의 『단어와 규칙』은 그가 『언어 본능』이란 책을 쓴 이후,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언어에서 좀 먼 주제를 쓰고 난 후에 다시 한 번 언어심리학을 주제로 쓴 책이다. 말하자면 그는 언어에 대해 『언어 본능』에서 말하지 못한 무언가가 아직도 남아있어서 내심 찜찜해 있었단 얘긴데, 이 책을 쓴 이후로 핑커는 이제 더 이상 언어에 대한 책을 쓰지 않고 『빈 서판』 이나 『우리 마음의 선한 천사』와 같은, 이젠 뭐 더 이상 심리과학이라 부르기도 뭣한 사회과학적인 책을 (졸라 두껍게) 써 내고 있다. 말하자면 언어에 대한 얘기는 이 책으로 다 한 것일까.



스티븐 핑커 컬렉션

1. 『언어 본능

2.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3. 『단어와 규칙』 (현재 글)

4. 『빈 서판』

5.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6. 『지금 다시 계몽』


『언어 본능』과 이 책의 차이점이라면, 이 책이 주제가 좀 더 좁고 일관성이 있다는 점이다. 『언어 본능』은 말하자면 노암 촘스키 이후의 언어학과 (촘스키가 미친 언어학의 대 혁명), 그 이후로 촘스키가 탐탁찮게 생각하는 인지과학적, 진화심리학적 가설들에 대해 자기의 주장을 좀 더 추가하는 식의 내용이었는데, 말하자면 핑커는 촘스키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도 그의 거대한 마수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입장을 취하는 내용이었다. 때문에 언어 본능은 촘스키의 이론과 함께 유전자니 뇌니 하는 것을 추가적으로 덧붙여서, 내용상으로는 꽤 중구난방적인 스타일이 되었다. 그러나 이 책 『단어와 규칙』은 요약하자면 매우 간단히 요약될 수 있을 정도로 일관적인 내용이다. 심지어 단 두 단어로 책의 내용을 요약할 수도 있다. 바로 '단어'와 '규칙'이다. 이건 나에게는 매우 좋은 징조인데, 그동안 나는 그의 책에 대해 장황하고 이것저것 모든 증거와 가설들을 갖다 붙인 잡학사전적인 글쓰기 스타일이라, 좀 더 주제를 줄이고 간결하게 책을 쓰연 더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추가로 책이 두꺼워지고, 책값이 비싸지기 때문에 싫었다) 그래서 이책은 내가 누구에게나 자신있게 추천해줄 수 있는 스티븐 핑커의 책이다. 책 자체도 작은 판형에 쪽수도 750페이지밖에(...) 안되는, 핑커로서는 매우 예외적인 책이다.


Words and Rules - Steven Pinker

아까도 말했듯이, 책은 단 두 단어로 줄일 수도 있다. 바로 '단어'와 '규칙'이다. 주장은 언어가 이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단어는 언어를 학습할 때 우리들이 맨날 외우는 그것이다. 단어는 장기기억에서 '외현 기억' 이라는 형태로 저장되어 있으며, 이것은 우리들이 '단어'라는 단어를 말할 때의 그 의미 뿐만 아니라, 명시적으로 외워야 하는 언어의 모든 것들을 포함한다. (이를 테면, 소리나 발음, 불규칙동사 또는 관용적인 문장, 사람 이름 등)


규칙은 문법이다. 언어는 심층 구조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데, 모국어 화자는 절대 모르고, 오히려 외국어로서 그 언어를 배운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는 그런 것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자전거를 잘 타게 되어도 어떻게 잘 타게 되었는지 모르듯이, 우리는 왜 'mice-infested'라는 복합어는 자연스럽고 'rats-infested'는 부자연스러운지 모른다. (영어화자는 그렇게 느낀다고 한다!)


단어와 규칙은 서로 대립하여 불규칙동사와 규칙동사, 단어에 복수형을 붙이는 방법 등을 컨트롤한다. 규칙동사 -ed와 복수형 어미 -s는 규칙이다. 불규칙동사와 불규칙 복수 명사는 단어다. 재미있게도, 불규칙동사나 불규칙 복수 자체에도 규칙은 내재되어 있다. (핑커는 책에 영어의 모든 불규칙 동사와 불규칙 명사에 대해 생성 원리를 설명해 놓았다. 이거 자체를 읽는 것만도 꽤 꿀잼이다.) 그러나 불규칙을 만드는 규칙은 언제나 예외가 있고, 무엇보다도 행동실험이나 뇌영상을 통해 불규칙은 단어를 외운 듯이 외현 기억을 통해 작동된다는 증거를 발견한다. 사람들은 불규칙 단어 생성의 생성 규칙을 규칙이라 인식하지 않고 그냥 단어로 통째로 외웠고, 그에 따라 뇌의 다른 영역이 발현되고, 'rats-infested'에 불편함을 느끼는데도 'mice-infested'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단어와 규칙의 작동 원리는 문법에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음운의 규칙이다. 규칙은 발음까지 지정해 주기 때문에 -s나 -ed가 어떻게 발음될 지에 대한 예상을 모국어 화자들은 이유도 모르고 알고 있다. 놀랍게도 규칙은 모국어 음운이 아닌 경우에도 적용된다. 영어에는 'out-사람이름'으로 그 사람보다 뛰어나게 된다라는 의미를 지닌합성 동사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을 가지고 독일어 발음으로 끝나는 out-Bach를 만든 다음에, 여기다 과거형을 붙여서 (out-Bached) 사람들에게 발음해보라 했다. (이딴 실험을 만들어 내는 것도 대단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d/가 아닌 /t/라고 발음했다. 이를 통해 언어의 규칙은 언어에 광범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언어 시스템은 어떤 예상치 못한 외부의 사건에도 유연하게 대처가 가능한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두 가지의 가설이 준비된다. 규칙 중심 가설과 단어 중심 가설. 그 위대한 노암 촘스키의 규칙 중심 가설은 모든 예외와 불규칙을 규칙으로 환원하여 설명한다. 이른바 생성문법이다. 단어 중심 가설은 인공신경망으로 만들어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규칙 자체도 그냥 뉴런의 망 모형을 통해 불규칙과 똑같이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가설이 딱히 '단어 중심', '규칙 중심'인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일관적이게 설명되어 있다.)


핑커는 두 가설 다 언어 시스템을 설명하기엔 부족하고, 인간의 뇌 안에는 가설들이 설명하는 모듈이 두 개 다 내장되어 있어서 어떤 경우는 규칙을 붙이고, 어떤 경우는 단어를 암기해 낸다고 설명한다. 인지과학이 말하는 '모듈 가설'의 탄생이다. 그로서이 책의 중심 주제가 완결된다. 우리는 두 가지 방식으로 말하고 듣는다. 바로 '단어'와 '규칙'이다.


이 두 가지로 언어 시스템이 아닌, 인간 인지의 다른 행태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또 대단하다. 바로 범주 학습인데, 이것은 언어의 의미론에 해당되지만 언어 외적인 것도 포함된다. 개념에는 '홀수' 처럼 매우 규칙적인 것도 있지만 '게임'과 같이 (비트겐슈타인의 그 '게임') 애매하고 불규칙 암기를 해야 하는 개념도 있다. 비둘기가 새인지 아닌지에 대해 배울 때, 아이들은 날개로 난다, 깃털을 가진다 같은 규칙을 통해 그렇다고 배우지만, 펭귄에 대해서는 날지도 않고 털도 깃털같지 않지만 마치 불규칙 동사를 대하듯이 무작정 새라고 암기한다. (진화론을 배운 아이는 다르게 배우겠지만, 결국 학습 후에 '펭귄이 새입니까?'라고 질문받았을 때 생각하는 인지 과정은 교회를 다니는 아이들의 인지 과정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어떤 것을 학습하는 데 있어서, 그것이 언어적이는 비언어적이든간에, 단어와 규칙은 배타적으로 작동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틀을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대니얼 데닛의 『마음의 진화』, 『단어와 규칙』과 같은 시리즈로 표지가 비슷하다

어떤 원시적 생물은 환경과 상호작용할 때 무작정 내재된 규칙만 가지고 행동한다. (이 생물의 이름은 '스키너'로, 대니얼 데닛의 『마음의 진화』에 나온 개념이다) 이 생물이 안정된 환경에서 천년만년 산다면야 그 생물은 안정된 삶을 누리겠지만, 환경은 생각보다 꽤 복잡하고 또 내재된 규칙만으로 행동하기엔 규칙으로 적용될 수 없는 특이한 양상이 나타날 때는 대처가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포퍼'란 생물이 진화했다. 말하자면 '단어'의 탄생이다. 이 생물은 기억용량을 가지고 있어서, 불규칙적인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대해 최초의 실패에 대한 기억을 저장하여 다음 번엔 더 유연한 대처를 할 수 있다. 인간이 규칙과 단어에 대한 두 가지 모듈을 가지게된 건 '포퍼'의 벽을 넘은 고등생물인 까닭이며, 또 인간이 언어를 진화시킨 원동력도, 언어가 두 가지 행동 방식을 가지게 된 것도 이 진화의 역사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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