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상이 부서져버린 당신에게
끝까지 날 놓지 말아 줘
'힘들지 않아 거친 정글 속에 뛰어든 건 나니까'
성인인 내가 가져야 하는 삶의 자세지만 자존감이 박살 난 나에겐 너무나 잔인한 말.
정말 좋아하는 노래지만 자꾸 비수처럼 박혀서 요즘엔 외면하는 노래다.
더 듣다가는 나 자신이 산산조각 나서 짙은 흔적만을 남긴 채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하늘의 끝을 향해 뚫고 올라가는 계단을 바라보며 오를 수 있을까란 생각에 불안해져'
요즘엔 '잘 될 거야'라는 격려보다는 '망하면 어때?'라는 위로 아닌 위로가 더 위로가 될 것 같은 나날이다.
사회 경력이 3년 넘게 단절되었고 타인과 대화를 나눈 날이 손에 꼽을 정도가 되니 나만의 세상에 너무 오래 갇혀있어서 내 자존감이 이렇게 산산조각 난 줄도 몰랐다.
아마 그래서였던 것 같다. 민음사 댓글 이벤트를 두 번째 광탈했을 때 모든 민음사 sns를 끊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모든 민음사 책들을 비우고 민음사에서 출판된 책은 더 이상 사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게.
나에게 남은 거라곤 글 좀 끄적이는 것뿐인데 두 번씩이나 나의 글이 선택받지 못했다는 게 너무 화가 났다.
누구보다 민음사에서 내세운 기준에 부합하게 썼는데, 정말 그 몇 줄 써 내려가려고 정보도 찾아보고 고민하다가 한줄한줄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내 글이 단순히 유명한데 못 읽어서 읽어보고 싶어요 댓글에 밀렸다는 게 너무 기분 나빴다.
고작 글이 뽑히지 않았는데 나의 모든 것들이 거절당한 기분이었다.
단순히 나를 떨어뜨려서가 아니었다.
광탈한 이벤트가 하나 있었다. 드라마 본방사수본을 캡처하고 글을 쓴 후 태그를 걸면 되는 이벤트였는데 글을 읽으면 누구나 그 장면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자세히 썼고 나의 생각들을 갈아 넣었다. 물론 상품이 탐나 글을 썼지만 그 장면을 곱씹으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라 꽤 괴롭지만 즐겁게 썼다.
하지만 광탈.
당첨자들의 글을 보러 갔다.
사진도 글도 나만큼 정성스럽게 쓴 사람이 없었다. 글은 대부분 한두 줄 정도였고 나보다 사진을 많이 올린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떨어진 것에 난 납득했고 그저 아쉬움만 남을 뿐이었다.
이유는 나는 처음부터 그 이벤트에 도전하지 않았고 너무 완벽을 추구한 나머지 당일에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그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겨도 그 부분에서 내가 부족했던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어떤 악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깟 자존심이 밥 먹여주냐? 글 쓰는 게 대수냐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글을 쓴다는 건 내가 남들과 비교해서 조금 더 쉽고 잘 쓸 수 있다고 자부하고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작가님들만큼의 실력은 아닐 테고 여기저기 얼룩덜룩하지만 난 자신 있게 난 좀 글을 쓴다고 말할 수 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다.
초등학교 때 단 한 번도 일기가 밀려서 일기예보를 찾아가며 기억을 더듬더듬 글을 쓴 적도 없었고,
주니어 네이버에 글을 써서 해리포터 일러스트 머그컵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웨스트라이프 앨범 댓글 이벤트도 5위 내로 당첨되었고, 기대평으로 자우림 콘서트도 가봤으며, 최근에는 총 4권의 책이 당첨되었다. 모두 글로.
그중에서 가장 큰 자랑은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글을 써서 아침 조회시간에 전교생 앞에서 상을 받았던 고등학교 때의 기억. 그게 나의 가장 큰 자산이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스트레이 키즈의 My pace를 들었다.
당시 가장 신곡이었던 신메뉴를 시작으로 첫 곡이었던 헬레베이터부터 랜덤으로 여러 곡을 들어보고 담아두었던 곡이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듣던 당시에도 꽤나 인상 깊은 가사였나 보다.
가사가 전체적으로 너무 좋다.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나의 속도대로 나의 방식으로 나의 보폭으로 가라는 그 메시지가 너무 좋다.
사실 나의 자존감 와장창의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모든 것들을 끊어내고 달려온 3년간의 공시 대장정이 탈락의 탈락을 거듭한 끝에 아무런 수확도 없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그 길에 들어서면서도 가장 우려했던 것이기도 했는데 항상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지.
나보다 더 짧게 준비했던 사람들 혹은 나와 같은 공간에서 공부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합격을 달고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많이 힘들고 괴로웠다.
그럼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자신이 꿈꿔오던 것을 현실로 이룬 사람들은 그 후 적막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도중하차를 하는 사람에게도 비슷한 적막감이 찾아온다. 삶은 계속 이어져야 하기에.
그리고 실패했다는 절망감 패배감으로 얼룩진 나를 다시 쌓아 올리는 과정과 함께.
아직 무엇을 목표로 살아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우선 이 패배감 무력감으로 가득한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가장 우선 해야 하는 것일 테지.
참담한 전투에서 무너져 내린 성곽을 재건하는 마음으로 작은 것부터 하나씩 목표하고 실천해 나가면서 벽돌을 하나씩 쌓아 올려야지.
오히려 지금 이렇게 크게 무너진 것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정말 아슬아슬하게 줄 타듯 살아온 것들을 다시 튼튼하게 세울 수 있을 테니까.
20대의 넘치는 열정은 없지만 그래도 책임져야 할 것들이 없어서 다시 일어설 용기는 있으니까.
매일 작은 것들을 지키고 매 순간 작은 것들에서 행복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면 되는 게 아닐까. 가장 나답게.
글을 쓰며 작성한 제목에 대한 대답이 떠올랐다.
그 부서진 조각들의 프리즘들이 더 다양한 빛을 비춰줄 거예요.
부서지고 깨진 단면들로 더 다채로운 빛을 반짝이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