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정을 부정하기
겉보기에 사랑과 동정은 별 차이가 없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확연해진다. 동정받는 사람은 시들고 사랑받는 사람은 생기를 머금는다. (서영남, '민들레 국수집의 홀씨 하나' 중)
불쌍하게 보니까,
불쌍해지는 것이다. 사랑스럽게 보니까 사랑스러워지는 것이고. 사람은 눈으로 많은 일을 한다. 어떤 대상을 바라보며 하는 생각(염원)은 시선을 타고 대상에게 전달된다. 이것은 마치 주술과 같아서, 하나의 시선을 지속적으로 받거나, 아주 많은 시선을 한 번에 받아 임계질량이 차면, 폭발한다, 대상이 변한다. 욕먹는 사람이 오래 산다는 말, 진짜로 오래 산다는 말이 아니다. 빨리 죽었으면, 하고 바라는데도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우회적 표현이다. 욕 많이 먹으면 대부분 빨리 죽는다. 임계질량이 빨리 찬다. 욕먹지 말자. 그냥 세상 바라보며 좋은 생각, 사랑의 마음, 긍정을 염원한다면, 세상도 나에게 같은 시선을 돌려주지 않을까?
우리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긍정보다는 부정적 견해를 먼저 말하는 경향이 있다.
"잘 되겠어? 쉽지 않을 거야."
"아마 안될 가능성이 더 높아."
일이 잘 되지 않았을 때 비난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거봐 내가 잘 안 될 거라고 했지? 그럴 줄 알았어."
비겁한 책임회피이다. 세상 일이란 잘 안될 수도 있는 거다. 다 잘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부정적인 말을 하게 한다. 우리는 성인이 될 때까지 "넌 할 수 없어."라는 말을 평균 15만 번 듣지만, "넌 할 수 있어."란 말은 겨우 5천 번 정도 듣는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난 할 수 없어.'라는 부정적 믿음이 마음속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말이다.
'가능할지 몰라도 어렵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어려울지 몰라도 가능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가능성이 낮다는 것은 가능성이 제로(0)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하는 일에 가능성 제로인 일은 거의 없지 않을까? 아무리 작더라도 그 가능성을 믿는 긍정의 힘을 가져야 하겠다. 사람의 말이나 글은 주술과 같아서 만들어지는 순간, 구속력을 갖고 사람의 행동을 유도하게 된다고 한다. 말한 사람이나 듣는 사람,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의 행동을 이끌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가급적 긍정의 대화를 하자. 비록 부정적으로 생각했더라도 표현은 긍정적으로 하도록 하자.
딸 그림, 부정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