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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Nov 02. 2022

불면의 새가 찾아왔다

# 실수로 마신 한 잔의 커피.


현대인은 아무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해요. 전기가 발명되고 매머드 도시가 등장한 이후로 현대의 밤은 일종의 교란 상태에 빠져 있죠. 게다가 자본주의가 선물한 최고의 유산은 바로 불안이에요... 알다시피 불안은 숙면의 최고의 적이에요. (김언수, '캐비닛' 중)



옛날에는


아무리 커피를 마셔도 잠만 잘 잤는데. 언제부턴가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을 자지 못한다. 어제도 그랬다. 저녁에 실수로 마신 커피 한 잔이 온몸의 신경세포를 각성시켰고 04:20분이 지나도록 잠들지 못했다. 혹시 누가 나의 잠을 가져간 것일까. 나의 잠을 누가 대신 자는 건 아니겠지. 고민할 고민이 없다는 고민에 빠져, 이리저리 생각을 뒤척거리다 06:01분 알람 소리에 이불 밖으로 기어 나왔다. 아직 새벽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새벽보다 앞서 일어나 어둠을 연 것이다. 세상 일 다 끝내지 못하면 눈 감지 못한다는데, 무슨 못다 한 일이 있어 새벽까지 잠들지 못한 것일까. 부처 예산을 총괄할 땐 2박 3일 밤샘도 거뜬했는데. 이제는 잠들지 못하고 깨어 있는 일이 고통스러운 일이 되다니. 안개 같은 잠이 그립다.



사람의 잠은


평생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70세, 하루 8시간 수면시간을 기준으로 할 때, 사람은 8,516일, 약 23년을 잠으로 보낸다고. 엄청난 세월이 아닌가. 계산을 해보다 깜짝 놀랐다. 위리엄 디멘트 박사는 <수면의 약속>에서 사람이 자신의 적정 수면량을 채우지 못하면 '수면빚'으로 남는다고 경고했다. 수면빚은 저절로 소멸되지 않고 체내에 축적되다가 어느 순간, 사람을 돌발적으로 잠들게 한다는 것이다이렇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 마이너스통장처럼 늘다가는, 수면의 채무 때문에 노후에는 잠만 자게 될지도 모르겠다. 큰일이다. 나는 잠든 노후는 원하지 않는데 말이다. 



서울에서


세종으로 내려왔을 때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캄캄해서 좋아요. 고요해서 좋아요." 아내는 밤이 밤다워서 좋다고 했다. 낮에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았다며 놀라워했다. 아이들이 웃고 떠들며 노는 소리가 너무 듣기 좋다며 항상 창문을 반쯤 열어 두었다. 그랬다. 지금까지 우리는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알고 살았다. 낮보다 밝고 화려한 밤, 매연과 소음 때문에 열 수 없는 창문, 아무도 놀지 않는 빈 놀이터... 이런 것들이 비정상적인 것이다. 너무 늦지 않게 정상으로 돌아와서 다행이다. 이제부터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며 살아야겠다. 아, 밤에 잠을 자지 않는 것도 비정상적인 것이겠지. 제발 낮에 일하고 밤에 자자.






딸 그림, 불면의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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