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는 가려서 베풀지 않는다.
하나를 열로 나누면 가진 것이 1/10으로 줄어드는 속세 수학과는 달리, 가진 것 하나를 열로 나누었기에 그것이 ‘천’이나 ‘만’으로 부푼다는 하늘나라의 참된 수학을 배웠습니다. (이태석 신부)
보통,
우리가 무엇을 나누어 줄 때는 기준을 정하고 거기에 부합하는 사람에게 줍니다. 모든 이에게 나누어 줄 양이 되지 않는다, 자원의 유한함 때문이라 변명하면서. 이른바 '주기는 하겠지만, 받을 자격이 있는 이에게만'을 가치로 하는 선별적 복지입니다. 그러나 나무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필요한 이에게 내어 줄 뿐입니다. 사과나무가 사과를 먹을 자격을 따지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감나무가 감을 따는 사람을 가리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라도 지나가다, '어? 감이다, 먹고 싶다.' 손 내미는 사람에게 기꺼이 내어 주는 것이 나무의 방식입니다.
가진 것을 나누지 않고,
움켜쥐고 있으면 결국 썩어 버릴 뿐입니다. 주는 것은 삶의 방식이고, 가지고 있는 것은 죽음의 방식이라 합니다.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고,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나누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천 배 만 배로 늘어나는 것이 나눔의 본질입니다. 세포분열처럼 말입니다. 우리도, 나눔의 대상을 판단하지 않고 그냥 있는 것을 내어 주는 나무의 방식을 따라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래서 이름도, '나 이제 다 나누어 주고 아무것도 없다.'는 뜻의 '나... 무(無)'인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