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방에 사는 여자 May 06. 2024

봄의 동화





허기진 봄날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을 뜰팍에 던져놓고. 부엌으로 들어가 황급히 무쇠솥 소당을 열어보면 어김없이 검정콩을 넣은 쑥 개떡이 있었다. 소나무 잔가지 위에 베보자기를 깔고 위에 찐  쑥 개떡을 한입  먹으면 입안 가득 쑥향과 솔잎 향이  어우러졌다. 쑥이  많이 들어가서 진한 쑥 개떡을 쇠똥 닮은 것 같다고 뒷집 숙이가 키득 거리고는 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맛있었다.



엄마 아버지는

어린 동생을 업고 들일을 나가고 언니는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던 봄날의 오후 부뚜막에 걸터앉아 쑥개떡으로 허기를 채우고 우물가로 가 마중물을 붓고 펌프질을 해서 물을 받아 마시고 시원하게 세수를 했다. 햇볕에 한나절을 달구어진 장독대에 벌러덩 드러누우면 하늘의 뭉게구름은 소리 없이  러가서

옆집  용이네 미루나무에 걸릴 테고. 빨랫줄에 널어놓은 래들이 바람결에 어김없이 말라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 식구들이 하나둘 빨래 줄에 엎드려 매달리는 상상도 해봤다.

저 하늘의 구름을 떠다가 동동 구루므를 만드는 걸까?갸우뚱 생각에 빠졌다.




빨랫줄에는 참새들이 소복이 날아와 앉았다가 떼를 지어 날아가고, 햇볕에 뚜껑을 열어놓은 장 항아리에서 짭조름한 된장 냄새,고추장 냄새, 간장 냄새가 솔솔 풍겼다. 따끈한 장독대에서 설핏 잠들었다가 뒤란감나무 잔가지가 툭 부러지는 소리에 놀라 잠을 깨면 불현듯 한기가 돌면서 집에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워진다. 장독옆 꽃밭에는 수국이 한껏 봉오리를 오므리고 있고,  나팔꽃 활짝 펼쳐진 꽃잎 사이로 개미들이 부지런히 드나들고, 꿀벌들이 꽃잎 위에서 붕붕 거린다.



솥 안의 쑥개떡을 반찬통에 담고 물도 주전자에 받아마 아버지를 찾아 동네를 돌아다니며 고추밭에도 가보고 마늘밭에도 가보고 산비탈 따비밭에도 가보고 논에도 가본다. 어디선가 눈에 익은 머릿수건이 보이고 "엄마!"하고 부르면, 엄마 아버지는 일하느라  굽혔던 허리를 펴고 막내 동생은  가마니를 깔고 포대기를 은 채 그늘에서 잠들어 있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출렁거리는 동안 주전자의 물은 반쯤 남아 있었다. 마 아버지는 물을 달게 마시고 쑥개떡드셨다. 머릿수건을 풀어 먼지를 털고 땀을 닦아 내던 엄마의

얼굴에는 웃음이 흘렀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