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방에 사는 여자 Oct 24. 2024

사과밭에서

1937, 오 지호. 사과밭



"저이들은 중학교 반이여!"

걷기를 하고 돌아오는 길, 사거리 신호등 앞에 서 있는데 옆에 서 계셨던 할머니께서 다른 할머니를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할머니들께서는 제법 썰렁한 날씨에 도톰한 모자를 쓰시고 알록달록한 가방을 등에 매고 있었다.

핱머니께서는 건너편의 할머니 두 분께 손을 흔들어 인사를  네셨다."낼 성당서 요!"

"그려요!" 서로 인사를 나누며 길을 건너신다.

아마도, 근처 평생교육 학습관에서 운영하는 봄날 학교에 공부하시러 가시는 듯하였다.

지나간 다른 할머니들께서 중학교반이라고 하셨으니 초등학교반 일 것 같았다. 팔십 대 전후로 보이는 두 분께서는 구부정한 허리에 불편한 몸이셨지만 걸음은 초등학생처럼 가벼워 보였다.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공부하러 가는 모습이 복사꽃처럼 달콤해 보였다.


올해 여든여덟이신 시어머님은 한글을 읽을 줄 모르신다. 남편이 중학생일 때 돌아가셨다는 시아버님께서는, 시어머님 보다 연세가 많으셨는데, 그 시절에 서울로 유학하여 명문고등학교를 나오셨다. 아버님은 영어도 잘하시고 한문도 명필이셨다고 한다. 지역의 국회의원과 함께 다니셨다고  하니 똑똑한 분이셨을 것이다. 같은 시절을 살아도 기회는 공평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특히 시대가 여자들에게는 가혹했다. 어머님께서는 일찍 혼자가 되시고 아들 사형제를 건실하게 잘 키워내셨다.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문자로 가득한 세상에서 자꾸만 바깥으로 내몰리는 처지였을 것이다. 여물고 단 속고갱이가 되지 못하고, 세찬 비바람 맞고 햇볕을 온전히 받아 내느라 억센 겉대가 되어야만 했을 것이다.

시간의 순서는 다 다르다. 두 할머니들께서는 속 고갱이들을 다 키워 내 보내고 미처 돌보지 못했던 스스로의 구멍들을 이제야 다독거리며 거름을 북돋아 주며 메꾸고 있는 중일 것이다.


화가 오지호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열네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외로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화가 오지호가 건강이 악화되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몸을 회복하고 되살아 나던 시기에 그린 그림이' 사과밭'이다.

개성의 송익산의 사과밭에서 꽃이 피는 단 삼일동안 야외에서 그려서 완성된 그림이다.

화사하고 밝고, 맑은 색들로 눈부시게 빛나는 봄을 가득 담아냈다. ' 그늘에도 빛이 있다'는 화가의 신념처럼  그림자에도 빛이 스며들어 찬란하고 풍요롭다.


나에게는 몇몇의 다정한 조언자들이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나에게 이로운 해석을 하라". 실타래처럼 연결된 업으로 어찌할 수 없는 날이면 그들의 조언을 경청하고 또 경청한다. 영상 속 그들은 왜곡하지 않고,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좀 더 나은 내가 되도록 도와준다.

"옛날 비디오는 그만 돌리고 오늘을 살라! 그만하면 잘해왔다"라고 다독인다.  

무서리 내린 새벽이면, 아버지는 맨 먼저 재를 쳐냈다, 거문대로 아궁이에 남은 재를 그러 모아삼태기에 담아 마당 끝 퇴비 간에 부었다.

멀끔하게 비워진 아궁이에 불을 붙이면 활활 불이 잘 붙었고, 구들장이 덥혀져 차갑게 식었던 방바닥이 따뜻해졌다. 아궁이에 불을 때서 물을 따뜻하게 데우고, 밥을 하고 국을 끓였다. 부엌에서  두런두런 엄마 아버지의 말소리와, 또각또각 도마질 소리가 들리면 이불을 한껏 당겨 올려 덮고 막내 동생의 겨드랑이로  손을 넣었다. 하루나 이틀이 아니었을 그 새벽의 나날들은 거름이 되었다.

두려움이 집어삼키는 순간이 오면, 나는 그 새벽의 기억을 불러와 세상 가장 안온한 옷을 입는다.

꽃이 만개한 사과밭처럼, 빛은 그늘로 형체가 완성되고,  그늘은 빛으로 피어난다. 그러므로 은 환희다.

이전 10화 오래된 집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