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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잡문인 Dec 20. 2019

시니컬한 사춘기  커피

  한 가지 퀴즈. 브루잉, 핸드드립, 푸어 오버, 필터 커피가 무엇일까요?

  커피를 좋아하고, 카페에 자주 다닌 사람이라면 알지도 모르지만. 커피에 흥미가 없어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바닐라 라테만 마신다면, 좀처럼 알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카페에 가면 이런 이름의 메뉴를 보게 된다. 어떤 곳은 브루잉, 다른 곳은 핸드드립, 또 어디에는 푸어 오버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고 이 메뉴가 모두 다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 똑같은 블랙커피로 제공된다. 이를테면 크레마가 있는 아메리카노와는 다르고, 우유가 들어간 라떼와도 다르다. 그저 검은색의 커피가 머그잔이나 앤티크 잔에 나오는 심플한 메뉴다. 아마도 손님의 입장에서는 맛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낄지도.

  내가 알기로는 브루잉, 핸드드립, 푸어 오버, 필터 커피의 추출 방법은 큰 틀에서 동일하다. 주전자로 뜨거운 물을 부어서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으로, 높은 압력으로 짧은 시간에 커피를 추출하는 에스프레소와는 다르다. 뜨거운 물을 붓고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 커피를 녹여내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째서 다른 이름으로 말하게 된 걸까. 이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른다. 오래전부터 궁금했던 부분인데, 아직까지 명쾌하고 시원한 대답을 들어보지 못했다.

  추측이지만. 단순하게 단어의 의미로 해석을 해보자면. ‘브루잉’의 Brew는 커피를 끓이다(만들다), 라는 의미로 커피를 내리는 모든 것에 대한 단어다. ‘핸드드립’은 말 그대로 손으로 물을 떨어트리는 행위에 붙어진 의미. ‘푸어 오버’는 쏟다, 엎지르다는 의미로 물을 커피에 쏟으며 추출하는 모습에서 붙어진 명칭이라 생각된다. ‘필터 커피’는 말 그대로 필터가 있고 필터를 거쳐 커피가 추출되는 방식이 아닐까.

  그런데 의미로만 생각했을 때에는 서로 중첩되는 경우가 많다. 브루잉은 모든 추출 방법에 포함되고, 핸드드립이나 푸어 오버는 물을 붓는 똑같은 행위에 붙은 단어다.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이름까지 다르게 불러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대체 어째서 이렇게 일일이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메뉴 이름은 카페 사장님의 마음이지만. 이렇게나 이름을 제각각 붙여버리면, 손님의 입장에서는 헷갈릴 수밖에.

  예전에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푸어 오버, 핸드드립, 필터 커피는 모두 각자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핸드드립’은 정성껏 양손을 모으고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주전자의 물을 천천히 붓는 방법이라고. ‘푸어 오버’는 한 손은 뒷짐을 지듯이 편하게 두고, 한 손으로 주전자를 들고 물을 콸콸 부어버리는 방식이라고 했다. ‘필터 커피’는 종이 필터가 사용되는 추출 방식으로 푸어 오버나 핸드드립에 속하는 개념이라고 했다. 앞서 내가 말한 의미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세세한 행동방식의 차이가 있는 셈이다. 으흠, 그런데 정말, 그렇게까지 세세한 행동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걸까.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예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어떤 일이었는가 하면,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데 커피를 가르쳐준 선생님이 찾아온 적 있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왔다고 인사하며 주문하셨다. 나는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커피를 내렸는데. 갑자기 긴장이 되고, 식은땀이 흐르고, 머리가 멍해지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커피를 맛있게 내려야 하는데, 맛없으면 어떻게 하지. 잘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마치 커피가 눈치를 챈 것 마냥, “아, 이거, 안돼. 자신감 부족이야. 탈락. 그런 나약한 마음가짐으로는 커피를 내릴 수 없다고. 훈련 부족이야. 맛없으면 어떻게 하지, 같은 태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라는 시니컬한 태도로 쓴맛만 왕창 내어줘 버렸다. 나는 어떻게 할지 몰라 난처해하다가 체념하고, 선생님에게 쓴 커피를 드리게 되었다.

  그러다 한참 뒤에 절망적인 마음으로 커피를 다시 내려봤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맛있는 맛이 잔뜩 나왔다. “그래 그래, 잘 좀 하라고.”하는 식이다. 커피는 마치 시시때때로 가면을 바꿔 쓰는 교활한 원숭이처럼 수시로 가면을 바꿔 쓰면서 맛을 조종한 것이다. 잘 좀 하라고. 하는 식이다.

  이건 마치 커피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이를테면 커피는 공기의 말을 들을 수 있어서, 커피를 내리는 사람이 어떤 태도로 생각을 하는지 모두 듣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리스타의 생각을 눈치채면, “쳇, 이 녀석. 커피를 대충대충 내리고 있군. 경건한 마음이 아니야. 마음에 안 든다고.”라고 하면서 쓴 맛만 잔뜩 내어주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이것도 세세한 행동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커피다. 커피는 자고로 불만이 많은 사춘기 소년 같은 면이 있어서, 아주 예민하고 난폭하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핸드드립, 푸어 오버, 필터 커피 같은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 납득이 된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말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꼭 메뉴의 이름까지 제각각 다르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가능하다면 커피를 하는 사람들 모두 모여서 “자자, 손님들이 복잡해하고 어려워하니, 이렇게나 세세한 행동방식 때문에 복잡한 이름을 자꾸 만들지 맙시다. 자자, 그러니 이제부터 우리 모두 필터 커피로 통일합시다.” 하는 식으로 정리하면 좋지 않을까요. 에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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