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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연 Oct 27. 2020

사부作하고 꼼지樂

커피 여과지 받침

밭 가에 있던 은행나무를 베어 낸 적이 있습니다.

은행나무를 좋아하지만 밭에 그늘을 만들고 가을이면 낙엽이 쌓이는 게 거슬렸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막걸리 한병 부어주고 톱을 넣었습니다.


자른 나무는 밑둥이 10센티 정도밖에 되지 않아 딱히 쓸데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래도 불쏘시게로 태워버리기엔 깨름칙했습니다.

생목숨 자른 죄가 더 커질 거 같았거든요.

그렇게 비와 햇빛을 피해 처마밑에 세워 둔게 몇년 전입니다.


비가 추적대던 지난 여름,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커피 여과지를 보다가 저걸 세워둘 수 있는 받침대를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방치해둔 은행나무를 떠올렸습니다.

톱을 들고 살펴봤습니다.

푸석해진 껍질이며 처음보다 가벼워진 무게 때문에 모조리 삭아 버린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반신반의하며 잘라 속을 들여보았습니다.

멀쩡합니다.


아이들이 쓰던 조각도로 껍질을 벗겨내며 모양을 잡았습니다.

옹이는 그대로 붙여 두기로 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모양이 나왔습니다.

한참 들여다 보다 사포를 들고 표면을 다듬었습니다.

다시 한 달여를 기다려 수성스테인과 오일을 발랐었습니다.

뽀얀 속살에 기분좋은 윤기와 생동감이 더해집니다.

무려 세달에 걸친 받침대 작업이 끝났습니다.


가을이 되어 산에가서 싸리나무 가지를 잘라왔습니다.

싸리나무는 은행나무 속살과 색깔이 비슷해 어울릴 거 같았습니다.

아니나다를까 둘을 옆에 두고 보니 서로를 내치지 않습니다.


다시 2주, 싸리나무 가지에서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둘을 합체했습니다.

드릴로 은행나무 똥가리에 구멍을 뚫고, 싸리나무 끝을 깍았습니다.

이게 뭐라고, 둘을 맞춰 끼울 때는 긴장감마저 돕니다.

다행히 상상했던 그대로입니다. 아니 상상 이상입니다.

비틀린 싸리가지, 도발적인 옹이도 한 몫 거듭니다.

대수롭지 않게 쳐다보던 옆지기도 나쁘지 않다는 반응입니다.


커피 여과지를 끼우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몇달여를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거린 즐거움이 가을 햇살을 배경으로 빛납니다.























#커피여과지 #커피여과지받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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