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아얌 Mar 01. 2022

담쟁이 한 잎

늦깍이 대학생의 캠퍼스 일기  

이른 새벽, 집을 나서니 밤사이 첫눈이 왔다. 찬 바람을 맞으며 버스를 기다리기를 이십여 분. 버스를 타고 수십 개의 정류장을 지나 한 시간이 넘게 가자 학교 근처 정류장에 도착했다. 학교 정문을 들어서니 손자뻘 학생들의 활기찬 걸음에 나도 덩달아 힘이 솟는다. 그들과 함께 수업을 하며 70을 넘긴 내 나이를 잊어버린 지 오래다.




입학식 날도 오늘처럼 눈발이 날렸다. 추운 날씨에도 학부모들과 학생들로 붐볐다. 나는 나이가 많다는 부끄러움을 참으면서 맨 뒷줄에서 마음을 다잡으면서 서 있었다. 남편과 자식, 사위, 손자들이 있었지만 입학식에 부르지 않았다.


70에 대학생이 된 내게 축하객은 나 스스로이면 족했다. 북적이는 입학식의 한가운데서 신입생이 된 나와 그런 나를 격려하는 나, 이렇게 둘이 서있었다. 나는 다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학교는 다녀야 한다. 그러려면 건강해해야 한다.'


학교에 들어와서 처음 몇 개월은 대학생활을 익히느라 정신이 없었다. 강의실도 못 찾아 쩔쩔매다 지각한 때도 많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의지가 차츰 비틀거렸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지’라고 반문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책상 위에 붙어 있는 ‘나의 가치’라는 문구에 눈이 멈추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나의 다짐’은 '십 년 후 수필가가 되는 것'이다.


그 다짐이 조금씩 흐려져 가던 어느 날, 고마운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일 학년 정보처리 개론 시간.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나를 안쓰럽게 여긴 교수님은 도우미를 두 명 붙여 주셨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나를 ‘탈무드’(동·서양의 지혜서)라고 말씀하셨다. 덕분에 어려울 거라 걱정했던 수업을 간신히 마쳤으나 도우미 학생들에게 지장을 준 것 같아 미안했다.


그 다음 시간부터는 그 학생들에게 “이제 괜찮아 나 혼자 할 게,”라고 했다. 그리고 컴퓨터 마우스가 움직이는 순서를 하나하나 연습장에 메모했다.


집으로 온 나는 메모한 것을 보며 뜬눈으로 컴퓨터와 씨름을 했다. 처음에는 배운 대로 잘 되지 않았지만 매일 꾸준히 연습하니 제법 문서를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한 학기를 어렵게 마친 어느 날. 조 모임으로 우리 과 학생들과 차를 마시러 북 카페에 들렀다. 카페 외벽에는 담쟁이넝쿨이 초록을 벗고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휘장을 쳤다. 20대 조원들에게 이제 나는 낯설지 않은 넝쿨 속의 담쟁이 한 잎이 된 것 같았다. 손자뻘인 학생들과 같은 조원이 돼 모임을 하자니 수업 때와 또 다른 행복이 밀려왔다.




틈만 나면 나는 학술 간에서 책을 빌려 독서를 했다. 독서광이 되어가며 행복했지만 눈이 침침해지는 것이 아쉬웠다. 난생 처음 '안경'도 맞추게 되었다. 평생을 맨눈으로 살아온 내게 안경은 대학생이 된 상징 같이 느껴졌다.  


2학년 때 수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교양과목 ‘앎과 삶’ 시간이었다. 넓은 강의실에서 일백여 명의 학생들이 그날따라 더 웅성거렸다. 마치 푸른 바다에 요동치는 파도 같은 청춘들.... 함께 조 모임도 하고 발표도 하지만 수업 시간 언제나 내 곁은 빈자리였다. 20대 학생들에게 70대의 동급생은 옆에 앉기 어려운 존재였을 수 있다. 아니, 어쩌면 나에 대한 그들의 배려일지도 몰랐다. 자신들을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공부에만 집중하라는....


강의가 시작됐다. 교수님은 ‘나의 가치’라는 주제로 5분 동안 글쓰기를 하라고 했다. 강의실은 분주히 글을 쓰는 소리만 가득했다.


잠시 후 교수님은 누가 발표를 하겠냐고 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길래 나는 용기를 내어 손을 들었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일의 결실이 나의 가치를 높일 때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의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교수님은 내게 물었다.


  “지금 행복하십니까?”

 

나는 대답했다.


  "솔직히 지금은 과제가 너무 많아 행복한 줄 모르겠습니다."


와하하. 강의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공부가 어렵긴 하지만 먼 훗날, 지금을 돌아보면
제가 행복했다는 것을 깨달을 것 같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강의실을 나올 때 어떤 여학생이 내게 말을 건넸다.


  “할머니, 참 훌륭하십니다” 


그 학생에게 고맙다고 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허전함이 밀려왔다. 밭곡식도 남들이 씨를 뿌릴 때 함께 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만학을 하면서 매일 겪는 외로움. 세상이 좋아져 내가 만학을 누릴 수 있다는 행복감도 잠시, 매시간 참기 힘든 외로움이 가슴 한편에 밀려왔다. 그때마다 강의실 창문 밖으로 멀리 우뚝 높이 솟아 있는 산꼭대기를 바라보곤 했다. 높이 오를수록 넓게 볼 수 있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되뇌어 보았다.

4년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내 시야는 더 넓어져 있을 거라 믿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우리 학교 캠퍼스엔 온갖 색깔 꽃들의 향기가 다복하게 넘친다. 정원 군데군데 벤치에 걸터앉아 있는 학생들이 사랑스럽다. 한가한 오늘, 나도 그들 옆에서 모처럼 교정 연못에서 잉어들의 헤엄치는 모습을 본다. 철학 수업 교수님이 지나다 말고 나에게 물었다.


  “파랑새를 찾았나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아직은요, 그러나 파랑새 소리는 들립니다.”


교수님은 웃으면서 “파랑새를 꼭 찾으세요”라고 했다.




강의를 기다리며 학교 북 카페에 혼자 앉았다. 창 너머 건너편 건물벽에 담쟁이넝쿨이 울긋불긋하다. 1학년 때 조 모임을 하던 가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캠퍼스에서 네 번의 가을을 맞다니...


청춘 남녀 학생들이 쌍쌍이 혹은 여럿이 지나가고 있다. 지나가는 저들 눈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갈대처럼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날리는 가을 여인으로 보일까? 명절에 찾아뵙는 집안의 할머니로 보일까? 갈색 마른 잎이 나마 안간힘을 써가며 꼭 붙어있는 담쟁이처럼 보일까?



푸른 잎 같은 학생들아, 내 비록 담쟁이 잎처럼 보일지라도
마음속에 파랑새가 있단다.



속으로 이렇게 말하며 카페 문을 열고 나온다. 팔랑. 마침 담쟁이 낙엽 한 잎이 발밑에 떨어졌다. 그 잎을 나는 조심스레 집어 들어 책 속에 넣었다. 이 낙엽 책갈피와 함께한 지금 이 시간들이 팔랑거릴 때는 언제쯤일까? 오늘 내가 꿈꾸는 파랑새는 지금 나를 만나러 어디쯤 오고 있을까?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글쓰는 할머니, 구하나

: 손자들을 키우러 상경했다 60에 여고 입학, 70에 국문과에 입학, 팔십대인 지금까지 팔팔하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