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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얌 Aug 31. 2022

암매미의 노래

아내에겐 혼자만의 방이 필요하답니다

새벽 2시, K 여사는 살포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남편이 그녀를 따라 일어난다. K여사는 깜짝 놀라 남편에게 작은 소리로 말한다.

“지금 몇 시인 줄 아세요? 옆집 젊은 사람들 잠 깨요.”

남편은 졸음이 덜 가신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몇 시긴 어제 그 시지.”


K여사, 어떻게든 남편을 다시 자리에 눕히려 애 쓴다.

“그런데 당신은 조용한 시간에 글 좀 쓰려면 왜 따라 일어나요, 강아지 엄마 궁둥이 좇듯이?”

“당신 내가 일어나 부아가 났구만. 허허. 근데 어쩔 수 없어. 어제저녁 경로당 회장님과 술 한 잔 했더니...”

말을 하다 말고 남편은 화장실로 들어간다. 잠시 후 물소리가 쇄쇄 새벽 공기를 가른다.


'아휴, 저놈의 술타령 지겨워라.....'


남편이 K여사의 마음을 어찌 읽었는지 툴툴댄다.

“아니! 자기 글 안 써지는 탓을 왜 내게 화살을 돌린담?

댄스스포츠 하러 다니지 말고 책이나 좀 읽으시지.

요즘 괜히 글 꽤나 쓴답시고 방을 두 칸이나 쓰고.”


K여사는 남편이 부아를 돋우는 와중에도 글을 쓴다. 속으로는 한숨을 살포시 내쉰다.

'이러니 여성 작가들은 문학관이나 집필실에서 쓰는구나. 나도 그럴 수 있다면....'


경상도 남자인 남편의 성깔이 요즘은 좀 누그러지긴 했어도 여전하다. 격려인지 핀잔인지 모를 말을 툭 던진다.

“있을 때 내게 잘해! 괜히 쓰지도 못하는 글 쓴답시고 밤마다 전기료만 올리지 말고. 굿 나이트.”


탁, 판을 치던 K여사의 손이 멈췄다.

‘그래 두고 보자 이참에 꼭 멋진 콩트라도 지어서 당신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고 말 테야’

그녀는 거실 테이블 위에 어제 막내딸이 놓고 간 조정래 작가님의 『풀꽃도 꽃이다』를 편다. 창가에 제라늄이 나풀거린다. 꽃 위로 흰나비가 날고 있다. 글을 쓰긴 틀린 밤이다. 거실로 나온 K여사, 가족 앨범을 심심파적으로 꺼내 넘겨본다.





올해가 결혼 50주년인 부부. 그들의 만남은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다. 시내 초등학교의 분교인 학교. 조그만 교실에는 남녀 삼십여 명의 학생이 전부였다. 시험만 보면 일 등을 놓친 적 없는 그녀에게 줄반장인 그는 아침 조례 때면 반듯하게 서 있어도 괜히 툭 치고 갔다.

 “똑바로 서!”


훗날 물으니 그때 그녀가 공부를 잘하는 것이 질투 나서 그랬다고 했다.


중학교 졸업 후 그녀는 마산으로 이사를 갔다. 삼사 년이 흐른 어느 날, 느닷없이 하얀 교복을 입고 훤칠한 키, 떡 벌어진 어깨와 불거진 근육을 자랑이라도 하듯 나타났다. 그 후 그의 군대 시절 주고받은 편지만 수십 통. 칠 년을 끌어온 우여곡절의 시간은 서로를 밀고 당기는 밧줄이 되었다. 


그렇게 좋아했던 연인도 반평생을 부부로 살다 보니 단물도 쓴 물 되듯 좋은 생각은 동이 나고 서로의 단점만 보인다. 세월 속에 닳아 느슨해진 밧줄 틈새를 비집고 달라붙은 해조류와 해초(방해물)들 같다. 반평생 굴곡의 시간들을 돌이켜보며 남편에게 서운했던 일을 차례로 떠올려 본다.


1. 초등학교 동창회 때 다른 여자 동창과 춤춘 일.

2. 길에서 만난 모르는 여인을 차에 태워준 일.

3. 친구들과 술 먹고 밤새고 들어온 일


잊히지 않는 일, 일,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나이 먹으면 남자보다 여자기가 세진다더니, 화도 제대로 못 내던 K여사, 요즘 들어 부아가 치밀 때도 있다. 말끝마다 토를 달아 남편을 약 올린다. 부부싸움이 시작되면 자녀들은 이편저편도 못 들어 도망을 간다. 관객 없는 무대는 승부 없이 막을 내린다. 새털구름 한 번 예쁜 줄 모르고 산 고단했던 지난날, 그때는 남편이 건실한 은행 창구 같이 믿음직스러워 보였건만. 이제 와서 서로의 장점은 바닥이 나 생트집만 집안에 쌓이는 시간이다.




아침, 그녀의 눈치를 보며 혼자 먹겠다고 식사를 주섬주섬 준비하는 남편. 그래도 경상도 남자치고 신혼 시절부터 가사 일을 반 이상 해온 점은 표창장 감이다. K여사가 일흔에 대학에 입학하고부터는 숫제 아침밥은 스스로 차려 먹기까지 했으니 평소엔 이런저런 일로 구박하더니 뒤늦게 공부를 한다 하니 왠일인지 선뜻 등록금에 가사노동 지원까지. 갑작스런 남편의 후원에 K여사는 자신의 볼을 꼬집어 보기까지 했다.

'정말 내 남편이 맞나?' 하여.


그 시절, 남편이 한번은 친구들에게 푸념을 했다 한다. 아내가 대학에 다닌 뒤로 자신이 빨래며 청소를 도맡아 한다고. 그러자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다.

  "여대생 데리고 사려면 당연히 그래야지." 라고.


K여사, 새벽에 남편이 자신이 글 쓰는 걸 훼방 놓은 일이 떠오르자 괜스레 남편의 아침 메뉴에 눈살을 찌푸려본다.

  “난 양식이 좋은데. 맨날 꼰대처럼 된장국에 밥이유? 디저트는 숭늉이고. 그 식단 벌써 수십 년이우. 질리지도 않나 보우?"


이 시간 아파트 11층 공기가 잠시 요동치는 걸 사람들은 알까 모를까? 그 원인이 같은 층의 노부부의 신경전 때문이란 것도....




어릴 적 문학소녀를 꿈꿨던 그녀는 어른이 된 뒤 뜻을 모르면서도 시집들을 늘 몇 권씩 사왔다.

그때는 남편 몰래 읽다가 이제는 대놓고 읽는다.

   "나이 들었다고 문학소녀가 되지 말란 법이 있어요?"


실은 오늘따라 늘 차려온 밥을 차리기 싫은 마음도 있었다.

엠한 시집을 무릎에 올려놓고 '문학소녀'인 척 시에 빠진 시늉을 한다.


아침 식사 준비 시간, 엉뚱한 그녀의 행동에  남편은 말을 하려다 말고 주춤거린다. ‘

  "참 그럴 만도 하네. 사람은 백 세까지 공부하라고 공자님이 말씀하셨지."


남편이 타협하듯 말을 잇는다.

  “당신도 수필인지 시인지 쓴답시고

평생교육원에 다닌다는 걸 주위 사람들이 다 아는데...”

 “그게 어때서요?"

남편의 핀잔에 그녀의 식어가던 이마의 열기가 다시 올라온다.

  “여자가 글 쓰느라 나다닌다고 영감님들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이 참에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중압감에 휩싸인다.




한 달 전 지인들 모임에서의 대화.


“여사님! 요즘 단편소설 쓰는지요?”

“언제 출판식이라도 하면 우리 꼭 빼놓지 마요”

"요단강 건너기 전에 완성하실 거죠? 하하.

“교보문고 맨 앞 자판에 깔리게 되면 연락하세요."


각양각색의 격려에 그녀는 부끄러우면서도 왠지 오기가 솟았다.

아무렴요. 먼저 요단강 건너신 분들까지 다아 초대할게요. 관 뚜껑 여는 소리에 놀라지나 말아요들!

라고 말하는 그녀, 하지만 어깨가 으쓱하다 이내 내려진다. 글 같은 글은 한 번도 내놓지도 않고 또 책을 낸다는 허풍만 떤 자신이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지만, 되레 큰소리친다.




어느새 흰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져 누운 목련꽃잎 같다. 문학을 조금이나마 알아가는 자신에게 늘 자신이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그래도 남들은 잘도 쓰는 시나 소설을 여태껏 한 편도 못 쓰는 것이 남편에게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허탈감에 싸인다. K 여사 뿔났다. 그래 두고 보자 꼭 멋진 콩트라도 써서 당신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고 말 테야.




오전 열 시, 게이트 볼 채를 어깨에 메고 현관문을 나가는 남편에게 그녀가 말했다.


  “공 잘 치고 오세요, 술 먹지 말고.”

  “나 오늘 늦을 거야! 기다리지 마요. 공 치고 나면 술은 필수!”


결혼 전 해도 달도 따다 줄 것 같던 늠름하고 다정했던 남편은 결혼 후 독불장군이 되었다. 그 성격을 받아준 세월이 반백 년. 늦게나마 공부해 책도 읽고 글을 쓰면서 남편을 설득하는 요령도 생겼다. 자기 할 말을 하는 그녀 앞에서 남편도 예전처럼  "여자는 무조건 복종해야지!" 식의 태도는 사라진 듯하다. 그래도 이따금 원위치로 돌아간다. 하지만 K여사, 다시는 '순종하는 아내'로 돌아가지 않을 거다.


어디선가 매미 울음이 요란하다.
입추인데도 사그라들 줄 모르는 저 노래,
나무 목말 타고 유난 떠는 저 소리는
분명 암놈일 거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글쓰는 할머니, 구하나

: 손자들을 키우러 상경했다 60에 여고 입학, 70에 국문과에 입학, 팔십대인 지금까지 팔팔하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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